역사속에 오늘, 4월/4월 9일

영국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 볼스, 35년 만의 사랑 결실

산풀내음 2017. 2. 19. 14:19

20054 9,

영국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 볼스, 35년 만의 사랑 결실

 

2005 4 9, 35년간 불멸의 사랑과 불륜 사이에서 방황하던 영국 왕세자 찰스(Charles Philip Arthur George, 1948. 11. 14. -, 56)와 그의 오랜 연인 카밀라(Camilla Parker Bowles, 1947. 7. 17. -, 57)가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 다이애나 비가 사망한 지 꼭 8년 만에 성사되는 재혼이다. 결혼으로 오랜 밀애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합법적인 부부로 새 삶을 살게 된 두 사람. 찰스와 카밀라로서는 35년 전의 첫사랑이 결실을 맺는 뜻 깊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국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잊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오랜 사랑의 결실을 맺는 가슴 벅찬 순간에도 찰스와 카밀라는 마음껏 기뻐하고 행복해할 수 없었다.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는 각각 결혼한 뒤에도 불륜 관계를 지속해 상대의 결혼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했고, 궁극적으로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2005 4 9, 찰스의 재혼

 

첫눈에 반했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해 멀고 먼 길을 돌아온 이들. 찰스와 카밀라의 인연은 지금부터 35년 전인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윈저 부근의 한 폴로 경기장이다. 카밀라가 먼저 찰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대담하게도 자신의 증조모가 찰스 왕세자의 고조부 에드워드 7세의 정부였던 사실을 이야기하며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을 건 카밀라. 찰스는 왕실 사정에 밝고 푸근한 카밀라에 푹 빠졌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했고, 열렬히 사랑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일단락된 건 1971년 찰스가 왕실의 전통에 따라 해군에 입대하면서부터. 이후 카밀라는 지난 1973년 찰스의 친구 앤드류 파커 볼스와 결혼했고, 찰스도 1981년 다이애나와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카밀라는 결혼한 뒤에도 남편의 친구가 된 찰스의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로 그의 곁을 지켰다. 열여섯 살 다이애나와 결혼할 것을 강력히 추천한 것도 카밀라였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찰스, 다이애나, 카밀라의 삼각관계로 이어진다.

 

Wedding photo of Andrew Parker Bowles and Camilla Parker Bowles in 1973

Charles, Prince of Wales, married Lady Diana Spencer in London, at St. Pauls Cathedral.in 1981

 

이후 터져나온카밀라 게이트’. “당신 바지 속에 살고 싶어(A desire to live inside your trousers).” 찰스와 카밀라의 밀어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된 뒤 찰스와 다이애나의 관계는 더욱더 악화됐다. 다이애나는 1995년 한 TV와 가진 인터뷰에서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좀 복잡했다. 세 사람이 있었으니까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다이애나 역시 맞바람을 피웠다는 고백이다. 결국 찰스는 1994년 불륜 관계를 시인했으며, 찰스와 카밀라는 1996년과 1995년에 각각 이혼하기에 이른다.

 

 

찰스는 카밀라와 재혼하고 싶어했다. 처음엔 여왕이 반대했다. 그러다 1997년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비운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이번엔 여론이 찰스 커플의 결합을 용납치 않았다. 카밀라에겐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국민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찰스의 곁을 지킨 카밀라. 그녀는 찰스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해냈고, 찰스의 정부가 아닌 아내가 됨으로써 대를 이어 내려온가문의 한까지 풀었다.

 

4 9일 윈저 시청에서 열린 두 사람의 재혼식은 1981 60만 명의 축복 속에 거행된 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게 치러졌다. 결혼 당일 신부는 순백의 결혼 드레스도 화려한 면사포도 쓰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참석하지 않은 채 조촐하게 치러진 결혼식은 찰스와 다이애나 비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비롯, 특별히 초대된 하객 28명만이 참석했다. 윌리엄 왕자와 카밀라 볼스의 장남 톰이 증인으로 섰다. 결혼식은 종교 예식 없이 성혼 선언만 한 채 25분 만에 끝이 났다. 찰스 왕세자는 웨일스산 금으로 만든 결혼 반지를 파커 볼스의 손가락에 끼워주는 것으로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을 약속했고, 이로써 파커 볼스는 이혼녀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왕실 여성이 됐다.

 

찰스 부부는 결혼식에 이어 윈저궁 안에 있는 왕실 전용 예배당 세인트 조지 채플로 자리를 옮겨축복 예배를 올렸다. 결혼식에 불참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와 토니 블레어 총리, 유럽 왕실 인사와 외교 사절 등 국내외 귀빈 7백여 명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예배중에 찰스와 카밀라는 두 손을 마주 잡고 17세기 기도문을 인용해불륜을 참회하기도 했다.

 

축복 예배 후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최하는 피로연이 열렸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일각에서는 정찬 대신 핑거 푸드만 차려진 점을 들어 마지못해 허락은 했지만 여전히 결혼에 부정적인 여왕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이라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피로연 직후 찰스 부부는 스코틀랜드 왕실의 영지 밸모럴로 10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드디어 합법적인 부부로 다시 태어난 두 사람. 하지만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을 바라보는 영국 시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첫사랑과 맺어지지 못해 다른 사람과 결혼, 아픈 사랑을 이어온 만큼 앞으로는 행복하길 빈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다이애나 비를 잊지 못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불륜을 저지른 이혼녀가 영국의 왕비가 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일부 국민은 왕위가 찰스 왕세자가 아니라 다이애나 비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에게 넘겨져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카밀라 파커 볼스는 왕세자비 공식 직함프린세스 오브 웨일스사용을 끝내 거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찰스가 왕이 된 뒤에도프린세스 카밀라(왕비)’가 아니라프린세스 오브 콘소트(왕의 배우자)’란 호칭을 사용하며 조용히 내조하는 삶을 살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행복이란?

 

35년간 끈질기게 이어져온 찰스와 카밀라의 사랑은 이렇듯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났다. 수년간에 걸친 대중과 언론의 비난, 조롱을 이겨내고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은 두 사람. 두 사람의 사랑을 둘러싸고 사랑이냐, 불륜이냐 여전히 말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앞으로 이 두 사람의 과제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자신들의 사랑 앞에 희생양이 된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일.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레이디경향. 2005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