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2일

유리 가가린, 최초 우주비행 성공

산풀내음 2017. 2. 24. 21:59

19614 12,

유리 가가린, 최초 우주비행 성공

 

하늘은 무척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 Alekseyevich Gagarin, 1934-1968)이 인류최초의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와 던진 첫마디였다. 1961 4 12일 오전 97, 4.75t 무게의 소련 우주선 보스토크1호가 유리 가가린을 태우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가린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1시간48분 동안 우주에 머물다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자 미·소 간 우주대결에서 또 이겼다는 자부심이 소련 전역에 넘쳐났다. 소련의 이즈베스티야 지()세계를 뒤흔든 108이란 제목을 대문짝만 하게 달았고 프라우다는 호외를 찍었다. 가가린은 중위에서 소령으로 두 단계나 건너 뛰었고, 레닌훈장까지 받아 소련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자츠크는 이름을 아예 가가린으로 바꿨다. 하지만 7년 후인 1968 3 27, 비행 훈련 중 타고 있던 제트 훈련기가 모스크바 근교 블라디미르 주의 한 마을에 추락해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34세였다.

 

 

내용을 동영상으로 시청하고자 하시면 아래의 링크를 눌러 주세요.
그리고,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Uaf7QsaYY&t=7s

 

 

 

 

 

 

 

그런데, 몇 년 후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의문과 논란을 낳았다. 1950년대 냉전시대에 구소련과 미국은 우주산업경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미국보다 빨리 유인우주선 발사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1961 4월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소련은 유인우주선 발사를 한 적이 없고 미국에게 우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 유리가가린을 포섭하여 거짓작전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근거로 108시간 지구를 돌면서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던 것이 유명하다. 7년 후 가가린이 전투기 시험비행 중 사망하자 소련은 가가린의 사망원인 등에 대해서 국방부 기밀로 처리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가가린의 양심선언을 두려워한 소련측에서 제거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A MiG-15UTI dual seat trainer jet, like the type that Yuri Gagarin and Vladimir Seryogin were flying in 1968.

 

유리 가가린은 구소련 스몰렌스크 주의 집단농장인 콜호스 구성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콜호스라 불리는 소련의 집단 농장에서 목수 일을 했고 어머니 역시 가축의 젖을 짜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 역시 다만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해서 받은 급여의 절반인 15루블을 고향의 어머니 앞으로 송금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사라토프 기술학교의 항공 클럽에 들어가 비행 기술을 익혔고, 오렌부르크의 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공군에 입대하게 된다.

 

우주 비행사 후보로 뽑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힘든 훈련에 돌입한 유리 가가린은 자전적 수기인 『지구는 푸른빛이었다』에서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무려 40회나 낙하했다. 한 회 한 회가 결코 같지 않았고 매번 다른 체험을 했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과 희열이 교차되는 감정을 맛보았다. 뛰어내리기 직전 온몸에 밀려오는 피로감, 내려오면서 느끼는 스릴과 쇼크, 그리고 바람을 찢는 소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낙하훈련은 인격을 단련시키며 의지를 굳게 했다며 훈련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소련은 여세를 몰아 이후에도 보스토크 이름을 단 유인우주선을 여섯 번이나 발사, 모두 성공시켰다. 특히 1963 6월에 발사한 보스토크 6호에는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테레슈코바(Valentina Tereshkova, 1937 - )를 태워 최초의 수식어를 독점했다. 가가린의 우주여행 3주 뒤 미국 역시 셰퍼드 중령을 태운 우주선머큐리캡슐을 쏘아 지구궤도비행에 성공시켜 겨우 체면은 세웠지만, 1957 10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때의 충격에 이은 또 한번의 패배로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Soviet cosmonaut Valentina Tereshkova, the first woman to fly in space, climbs into her capsule, Vostok 6, in 1963.

 

소련의 우위는 이때까지. 미국은 스푸트니크 충격 때 대통령과학기술특별보좌국과 국립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하는 등 부산을 떨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새로운 계획이 발표됐다. 1961 5 25일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야심 찬아폴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250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1969 7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날아간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 미국은 비로소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