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산풀내음 2017. 2. 28. 20:40

19784 14,

세종문화회관 개관

 

세종문화회관이 1978 4 14일 개관됐다. 1972년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 자리에 1974년 착공해 4년 만이었다. 221억원의 공사비에 대지 56백평 지하3층 지상6층의 건물이었다. 42백석의 초대형 대강당은 1백만달러짜리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됐고 무대는 5백평이 넘는 회전식이었다. 건축양식은 한국의 옛 건축양식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용하여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다.

 

세종문화회관이 1978 414일 개관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근혜와 함께 개관 테이트를 끊고 휘호탑을 제막하고 있다(사진 우측부터 정일권 국회의장, 최규하 국무총리, 민복기 대법원장, 구자춘 서울시장, 이은상 한국문화원연합회장, 박정희 대통령, 곽상훈 통일주최국민회의 운영위원장, 큰 영애 박근혜). 

1978년 개관 당시 세종문화회관

 

그러나,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서울특별시의 운영으로 ‘‘관료주의적인 운영이다.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1999 71일 재정은 서울시가 지원하고 운영은 시가 아닌 민간이 책임지는 체제인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는 세종문화회관 관장직이 `구청장 대기소`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과는 무관한 공무원으로 자주 교체되어 전문적인 기획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관주도 행사 위주로 운영되어 시민의 문화공간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문 클래식 콘서트홀이 아닌 다목적홀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음향적인 고려가 미진해 여러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음향상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잔향 부족이다. 잔향이 매우 짧아 사막의 울림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의 잔향이 짧은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홀의 구조가 음향학적으로 좋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넓적한 홀의 구조상 홀 측면이 충분한 잔향을 반사히지 못한다. 또 지나치게 큰 홀 규모, 천장의 형태, 거대한 2, 3층 객석계단의 존재 등 여러가지 난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3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면서 대극장에 마이크와 스피커를 이용한 음향보조시설을 설치하여 다소 개선되긴 했지만 홀구조상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근본적인 개선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제 경성부는 1935 1210일에 부민관을 건립했다. 지하1, 지상3층으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다목적 회관이었다. 1945 724일 강윤국, 조문기 등이 부민관을 폭파하기도 했다. 광복 뒤에 미군이 부민관을 임시 사용했고, 1949년 서울시 소유가 됐다. 1950 429일에 국립극단이 창단되면서 국립극장이 되기도 했다. ‘부민관 1954 6월부터 1975 9월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했다.

 

우측에 탑이 있는 건물이 일제 때 부민관(府民館),

서울시 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옛 부민관

 

광복 후에 이승만 정부는 부민관과 같은 기능을 하는 종합공연장으로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서울시민회관(우남회관)’ 건립을 1955년 계획했다. 이승만의 호를 따서 우남건립위원회를 조직하고 광화문 옆 세종로에(현 세종문화회관 자리) 부지를 정하고 1955 1121우남회관정지 기공식을 가졌다. 2억환 예산으로 연건평 3,391, 지하1, 지상4층 규모로 1956 61일 착공, 1961 10월 건물을 완공됐다. 1961 5.16군사쿠데타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건립 계획 때와 달리 건물 명칭은 우민회관에서 시민회관으로 바뀌었다. 시민회관은 1960년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였다. 공연과 음악회가 자주 열렸고 10층 옥탑은 당시 주변 건물 중 가장 높아서 야경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였다.

 

1956년 우남회관 착공식, 건물의 이름에 살아있는 권력자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전형적인 독재자(거의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과 같은 수준)의 전형적인 행태이며 게다가 만세까지 부르게 한다한심한 한국 정치의 현실이었다.

1958년 우남회관 상량식

1961년 당시 서울시민회관

 

1972 12월 밤 8 28분쯤 서울 세종로 서울시민회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날 시민회관에서는 문화방송 개국 11주년 행사로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밖으로 나오는 사이 갑자기 무대 조명장치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면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전기 과열로 말미암은 합선이었다. 관객 중에서 3분의2 정도는 퇴장한 상태였지만 아직 나가지 못한 사람도 많아 회관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화재로 53명이 죽고 76명이 다쳤으며 부상자 중에는 가수 문주란과 김상희도 있었다. 시민회관 화재는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1970년대 서울의 3대 화재 사건 중 하나다.

 

서울시민회관 화재

건설중인 세종문화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