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4일

일본 적군파 여왕벌, 시게노부 후사코 적군파 해산 공식 선언

산풀내음 2017. 2. 28. 20:52

2001 4 14,

일본 적군파 여왕벌, 시게노부 후사코 적군파 해산 공식 선언

 

일본의 극좌 게릴라 조직 `적군(Japanese Red Army)`의 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 1945 9 28 ~ ) 2001 4 14일 지지자들에 보낸 옥중 성명을 통해 적군파의 해산을 선언했다.

 

중동을 무대로 테러활동을 벌이다 1998년경 일본으로 입국해 다카쓰카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숨어지내다가 2000 118일 일본 오사카에서 체포된 시게노부는 이날 도쿄의 지지자 집회에서 공개된 성명을 통해국제주의와 군사를 특성으로 했던 일본 적군의 해산을 통해 새로운 투쟁방법에 도전하겠다며 합법적 활동으로 전환할 방침을 밝혔다. 그녀는세계는 변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투쟁은 불충분했고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로써 1971년 공산 적군파 간부였던 시게노부 등이 해외 혁명거점 확보를 위해 조직했던 적군파는 완전히 활동을 중단했다.

 


2000년 체포 당시의 모습

 

시게노부는 도쿄 세다가야(世田谷)의 극빈 가정에서 태어나 억척스럽게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도쿄의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가계를 돕기 위해 식품회사에 취직한 그녀는 고졸과 대졸의 처우에 심한 격차가 있음을 깨닫고 부모 몰래 메이지(明治) 대학 야간부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일 안보조약에 반대하는 이른바안보투쟁시위가 길거리를 휩쓸고 있었고, 학원가에서는 각목과 화염병이 난무했다. 시게노부도 입학금을 내기 위해 메이지 대학에 들렀다가 학비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퇴학당한 학생이 복학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시위 대열에 참가했다.

 

시게노부는 그 후 좌익계 학생 그룹이 점거한 한 대학에 각목 2백개를 날라다 주어여성 흉기 반입 제 1로 일약 유명해졌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이 높이 평가되자 시게노부는 더 적극적으로 좌익 활동을 벌이기 위해 1969년 조직된공산주의동맹 적군파의 간부로 들어갔다.

 

그러나 투쟁 노선이 과격해 일본 국내의 지지자들이 점차 떨어져나가자, 적군파는국제 근거지론을 내걸고 해외에 혁명기지 건설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첫 번째 투쟁이 1970 3월 일본항공 요도호 (よど) 납치이다. 적군파 대원 9명은 요도호를 후지산 부근에서 납치해 김포공항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북한에 적군파의 혁명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시게노부도 중동에 혁명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1971년 적군파 대원과 위장 결혼한 후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잠입해일본 적군을 결성했다. 시게노부는 당시 레바논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군사조직 팔레스타인인민전선(PFLP)과 공동 전선을 모색했다. 그 결과일본 적군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는 인질 테러 사건을 차례로 일으키게 되었다. 일본 적군이 저지른 첫 번째 사건은 1972 5월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테러이다. 일본 적군 멤버 3명이 텔아비브 공항에서 자동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여행객 24명을 살해하고, 76명을 부상시킨 사건이다. 일본 적군 2명은 현장에서 자폭하고, 1명은 체포되었다.

 

May 30, 1972 - Three members of the Japanese Red Army attacked Tel Aviv's Lod

 

1973 7월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상공에서 일본항공기를 납치해 리비아에 착륙시키는 하이재킹을 벌였다. 1974 1월에는 팔레스타인 게릴라와 함께 싱가포르의 정유소를 폭파하고, 쿠웨이트 주재 일본대사관을 습격해 대사를 인질로 잡았다. 같은 해 9월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일본 적군 3명이 프랑스대사관에 난입해 대사 등을 인질로 잡고, 파리에서 체포된 대원 1명을 석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1975 8월에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미국·스웨덴 대사관을 동시에 습격해 53명을 인질로 잡고 일본에서 복역 중이던 대원 5명을 석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1977 9월에 일어난 이른바다카 사건에서는 대원 6명을 석방시켰다. 인질로 잡은 승객들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6백만 달러를 받아내기도 했다. 그 후에도 자카르타(1986 5), 로마(1987 6), 나폴리(1988 4) 사건 등을 일으켜, 피해를 본 당사국들은 일본 적군 멤버들을 국제 사회에 수배해 왔다. 일본 경찰은 일련의 인질 테러 사건 배후에서 일본 적군의 최고 간부인 시게노부가 중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Japanese Red Army. A staff carrying bags contain 6 million U.S. Dollar ransom walks toward a special aircraft heading

 

그렇다면 레바논에 잠적한 것으로 알려져 온 시게노부가 30년 가까이 지난 뒤 일본에 다시 나타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우선 국제 정세와 중동 정세의 급변을 들 수 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1982년 레바논에서 철수하면서 일본 적군은 팔레스타인인민전선과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냉전 종식과 중동 평화 협상 진전으로 아랍 국가들이 외인부대나 마찬가지인 일본 적군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 예가 일본 적군이 본거지를 두고 있는 레바논의 치안당국이 1997년 일본 적군 멤버 5명을 구속한 일이다. 이들은 지난 3월 형기를 마치고 풀려났으며, 텔아비브 공항 난사 사건을 일으킨 주범 오카모토를 제외한 4명이 국외 추방되어 모두 일본 경찰에 인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