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9일

서윤복, 보스턴 마라톤 제패

산풀내음 2017. 3. 3. 21:45

19474 19,

서윤복, 보스턴 마라톤 제패

 

1947 4 19일 오전 11, 51회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한 8개국 156명의 선수들이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선에는 가슴에 ‘KOREA’ 와 태극기를 단 서윤복(徐潤福)과 남승룡(南昇龍)의 모습이 보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경기 시작 전 출전을 포기한 손기정 감독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무국적 선수단이었다. 일본인들이 입던 헌옷을 구해 유니폼 삼아 입었고 마라톤화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동대문 근방에서 헌 스파이크슈즈를 구해 밑창의 못을 빼고 리어카 바퀴의 고무를 잘라 덧대 신었다.

 

보스턴마라톤 출전은 서울운동장에서 연습하던 어느 날, 하버드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파견된 미군이 대회 정보를 알려주어 손기정이 감독, 남승용과 서윤복은 선수로 출전하게 되였다. 그러나 5000달러 상당의 현지 교민의 재정보증 조건이 문제였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출전의 길은 의외로 미 군정청에서 일행의 미국행 서류작업을 돕던 미국인 스매드릭 여사가 600달러를 선뜻 내놓으면서 쉽게 풀렸다. 스매드릭은 상관인 군정장관인 하지중장에게 모금운동을 건의했고 3000달러가 모아졌다. 나머지 2000달러는 세브란스의 언더우드박사가 한국 돈과 달러를 교환해주어 마련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의 프로펠러 군용기를 얻어타고 서울을 출발, ·하와이·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쳐 일주일이나 걸려 도착한 탓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보스턴에 도착한 것은 대회 개막 1주일 전. 국내에서 풀코스를 겨우 2번 완주한 경험 밖에 없는 서윤복은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최고기록은 2시간 39. 세계기록과 14분이나 차이가 있었다. 한국인 응원단은 감독과 코치, 교민을 포함해 9명이 전부였다.

 

165cm, 55kg의 왜소한 체격, 그러나 스물 네 살의 서윤복은 뛰다가 쓰러질지언정 기권하지는 않겠노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출발신호와 함께 세계 강호 156명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지점부터 선두를 달리던 서윤복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30km지점. 연도의 한 관중이 서윤복을 격려하려고 박수를 친다는 것이 그만 끌고나온 개의 끈을 놓친 것이다. 도로 안으로 뛰어든 개 때문에 서윤복이 넘어진 사이 78명의 선수들이 서윤복 곁을 스쳐 지나갔다. 벌떡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운동화가 말썽이었다. 끈이 풀린 것이다. 서윤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처 달렸다. 마침내 선두 탈환. 멀리 결승점 보스턴시 청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2시간2539, 세계 최고기록이었다.

 

광복 후 처음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국제 마라톤대회, 더구나 우승까지 일궈냈으니 손기정도 서윤복도 서로를 부둥켜 안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곧이어 남승룡도 2시간 40 10초를 기록하며 열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서윤복의 장거에 감격한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足覇天下·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를 휘호로 써주었다.

 



1947 420일치 <보스턴 선데이 글로브>에 실린 사진. 왼쪽부터 미코 피타넨(2·핀란드), 서윤복, 테드 보겔(미 터프츠대학). 서윤복일대기편찬위원회 제공

 

챔피언 서윤복은 고국으로 돌아갈 마땅한 교통편도, 여비도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당시 미국에 있던 임영신 여사(상공부 장관, 중앙대 총장 역임)가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43일간 미국체류를 마친 서윤복은 동남아와 일본을 거쳐 인천으로 들어오는 화물선을 얻어 타고 미국출발 18일 만에 귀국했다.

 

그가 귀국하던 날, 인천항은 서윤복을 맞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서윤복을 위해 집집마다 30원씩을 거둬 시민환영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은 서윤복에게 축하를 겸한 농을 건넸다.

나는 몇 십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신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는데 그대는 겨우 2시간2539초를 뛰고도 연일 신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구나.”

 

3년 뒤인 1950년에는 함기룡, 송길윤,최윤칠이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해 기적이 아닌 한국 마라톤의 저력을 보여줬다. 한동안 보스턴 무대를 밟지 못했던 한국 마라톤은 1994년 황영조가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며 4위에 올랐고, 2001년엔 이봉주가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날 보스턴 상공에는 51년 만에 다시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서윤복(가운데)과 손기정 감독(오른쪽) 등 일행은 태극기를 들고 인천항으로 도착했다

1947 622일은 보스톤마라톤 우승자 서윤복 선수가 인천에서 카파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