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22일

미국인 현각 스님, 현정사 주지로 취임 - 한국 사찰의 첫 외국인 스님

산풀내음 2017. 3. 5. 15:06

20014 22,

미국인 현각 스님, 현정사 주지로 취임 - 한국 사찰의 첫 외국인 스님

 

벽안의 미국 스님이 한국 절의 주지가 됐다. 1999년 가을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써 일반에 널리 알려진 현각(37) 스님이 2001 4 22일 경북 영주시 어래산 기슭에 문을 연 현정사 주지로 취임했다. 이날 현정사 개원 법회에는 조실로 추대된 숭산 스님을 비롯, 1000여명의 불도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현정사의 아침

 

사방이 산으로 막혔고 비포장도로를 10km 가까이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궁벽진 곳임에도 외국인 스님들도 대거 참석, 한국 사찰의 첫 외국인 주지가 된 현각 스님을 축하했다. 현각 스님이 현정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가을. 대중활동을 잠시 쉬고 혼자서 수행할 곳을 찾던 그는 현정사를 창건 중이던 정광명장 보살을 소개받고 이곳에서 100일간 묵언 정진했다.

 

현각(玄覺, Paul Muenzen, 1964 11월 28 ~ )1964 미국 뉴저지 라웨이의 가톨릭 교도 전통이 강한 가정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번째로 태어났으며 다른 형제들과 같이 가톨릭 중고교를 다녔다. 어머니 패트리샤 뮌젠은 아일랜드, 아버지 조지프 뮌젠은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1983 9예일 대학교 입학해서 서양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재학 시절 대학 3학년때 까지 당시 소련과 무기생산 경쟁을 하던 레이건 정권과 비도덕적인 남아프리카에 투자하는 대학 재단에 반대하는 운동도 열심히 했다. 1989년 하버드 대학원 입학 허가서를 받고 학비를 벌기 위해 월스트리트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대표적인 물질주의 사회인 월스트리트의 삶에 절망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브루클린 다리에 투신하려는데 우연히 만난 흑인 거지를 통해 깨우침을 얻어 마음을 바꾼다.

 

하버드에 입학해 비교철학을 공부하던 중 당시 일본인 지도교수가 숭산스님의 하버드 강연에 참석할 것을 권하면서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그때의 감동을 하버드대에서 숭산스님의 어설픈 김치 영어로 하시는 법문을 듣고 충격을 받은 뒤 밤마다 울었죠. 세상에 이런 가르침이 존재한다는 게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그 마음으로 혼자서 밤새 울었죠.”라고 표현했다.

 

다음날 케임브리지 젠센터(선원)를 방문해 참선 등 기초적인 내용을 배우기 시작해 결국 하버드를 휴학하고 1990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계룡산 신원사에서 90일 동안거를 마치고 귀국, 학업을 계속했으나 결국 1992년 수계식을 받고 정식으로 출가한다.

 

30대의 현각스님 모습. 지금은 절판이 된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표지 사진으로도 쓰인 이 사진은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아이 콘이 되었다.

 

그는 2008년 돌연 한국을 떠났다. 명분은 '유럽 만행(萬行)'이었지만, 스님은 "스승이신 숭산스님이 입적(2004)한 날부터 한국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폭풍(perfect storm)처럼 몰아닥친 명성"이었다.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요." 한국을 떠난 그는 유럽 만행을 거쳐 2009독일 뮌헨에 정착, '불이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원했다.

 

현각이란 존재를 한국에 넓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저명도로 수행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베스트 셀러 만행의 출판 계기와 목적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때만 해도 숭산의 사상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자들로서는 이를 집대성할 사명이 있어서 이런저런 출판사로 타진하고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거절당했다. 그때 한 출판사가 내 출가기를 써주면 스승의 책도 함께 출판해주겠다고 했다. 솔깃했다. 고민 끝에 계약했고 6주일 만에 원고를 썼다. 탈고한 뒤 100일간 안거에 들어갔는데 마치고 나와 보니 난리가 났더라. 그 책 때문에 숭산 스님도 세상에 더 크게 알려졌다."

 

"나는 한국인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과 철학이 있는지 일깨워주고 싶었다. 1990년대 초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기의 좋은 전통을 버리고 미국 사람들 사는 대로, 입고 먹는 대로 쫓아가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양 세계는 동양의 정신과 철학을 배우려고 안달인데.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불교 서적을 읽는 것은 피어싱과 함께 젊은 세대들의 최신 트렌드였다. 당신이 구식이라고 버린 이 스카프를 다른 사람들이 주워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고 열광하면, 버린 스카프를 다시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나? 내 책이 그런 역할 해주기를 바랐다."

 

종교에 대한 그의 소신은 종교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 돌이켜 살펴 볼만하다.

 

"이건 껍질일 뿐이다. 석가모니는 불자가 아니었다. 예수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종교를 만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개신교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 예수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이다. 종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해 나갈 때 참종교가 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나의 말을 믿지 마라, 내가 말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였다. 맹목적인 믿음은 종교의 독이다."

 

"[]은 걸어가야만 높은지 낮은지 비로소 알 수 있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그 보편적인 윤리의‘실천’으로 가야 참종교라고 강조하는 현각스님. 2010년 모처럼 한국에 온 스님의 하루는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