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25일

조선공산당 창당

산풀내음 2017. 3. 8. 21:05

19254 25,

조선공산당 창당

 

우리나라에 사회주의 사상을 처음 전파한 것은 일본 유학생들이었다. 1920 1월 이기동 등의 주도록 조직된 재동경 조선인 고학생 동우회는 1922 2 4일자 조선일보 지상에 전국노동자 제군에게 격()이라는 선언을 발표하고 동우회가 계급투쟁의 행동단체임을 밝혔다. 동우회의 선언을 전후하여 국내에는 사회주의적 색채의 단체가 태동하게 되었는데 그 중 무사자동맹회, 북풍회, 화요회, 조선노동당 서울 청년회 좌파 등이 대표적이었다.

 

신사상운동을 전개한다는 목표에서는 원칙적으로 동일선상에 있는 그들이었지만 경쟁적으로 좌파세력 확충에 힘쓰게 됨으로써 무원칙적 분파투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미 민족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각종 기성단체에 침투하여 내용상 같은 단체들을 장악하는 분할공작과 사상, 노농, 청년 등의 새로운 단체를 조직하는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923 6월 서울에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3인터내셔널 혹은 국제공산당은 1919 3월 러시아 공산당의 주도 인물들이 설립하여 1943년 해체된 조직이다.)이 설치되었는데, 이것을 코르뷰로국내부(高麗局國內部)’라고 하였다. 이 기관의 책임자는 블라디보스톡 코르뷰로에서 한국내 공산당 결성의 밀명을 받고 서울에 잠입한 김재봉으로 그는 서울에서 화요회를 모체로 이를 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1925 4 25일 국내 공산주의 단체인 화요회와 일본유학생계의 북풍회, 그리고 민중사계 및 신생활사계 구성원 19명이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창당했다. 이튿날에는 고려공산청년회도 결성해 국제공산당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과 국제공산주의청년동맹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당 조직은 책임비서에 김재봉, 조직부장 조동우, 선전부장 김참 등이었다.

 

조선 공산당 김재봉

 

조선공산당은 국제공산당이 그러함과 마찬가지로 그 한 지부로서 폭력혁명에 의거하여 공산주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은 물론인다. 조선의 문제로서는 공산당 지도 아래에 노동자 농민의 결합에 의하여 공동전선을 전개하고 일본제국의 통치를 변혁하여 그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려는데 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들인 일본의 제국주의를 타파하고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민족문제의 해결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부로 된다. 조선에서의 혁명적인 의의는 이와 같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의 민족운동을 원조함은 물론. 전술로서 민족주의적 단체와 제휴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은 이미 배우고 있다. 노동운동으로, 소작쟁의로 파고들어간다. 학교의 맹휴도 그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조직에서는 각 방면의 야체이카를 부식하고, 모든 표현단체에 프락치를 만든다

- 조선공산당 창당 전문 -

 

조선공산당은 계급투쟁과 민족해방을 기치로 일제하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1926 6·10만세운동 발생에 배후에서 영향을 미치고 신간회를 통해 전국적 규모의 활동을 벌여나갔다. 그러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산발적인 활동을 벌이다가, 1925 11월 신의주사건으로 알려진 제1차 검거사건을 시발로 1926 6, 1928 2월과 7월 등 4차례에 걸친 검거선풍으로 조직이 와해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 제3인터내셔널이 1928 `12월 테제`를 통해 조선공산당의 해체를 지시함으로써 제1차 조선공산당은 192812 7일로 그 막을 내렸다. 이후 조선공산당은 해방 뒤인 1945 9 12일 재건됐다.

 

1929년 모스크바 공산청년대학에서 공부한 멤버들.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김태연(김단야), 박헌영, 양명. 뒷줄 오른쪽 첫번째가 베트남 호치민.

1927 9 13일자 동아일보. 조선공산당 검거와 재판을 다룬 당시 신문기사다. 본래 이 검거사건은 1925년 말에 일어났는데, 일제의 보도 통제로 전혀 보도되지 않다가 1927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신문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기사 내용은 책임비서 김재봉을 비롯한 재판을 받은 관계자들의 사진과 조직표가 신문 전면을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