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25일

미군-소련군 엘베강 토르가우의 다리위에서 해후 (엘베의 맹세, Elbe Day)

산풀내음 2017. 3. 8. 21:16

19454 25,

미군-소련군 엘베강 토르가우의 다리위에서 해후 (엘베의 맹세, Elbe Day)

 

노르망디 상륙 이후 서부전선을 밀고 미군과 폴란드 프러시아를 뚫고 동부전선의 소련군이 유럽을 관통해서 합류한 것이다. 미 제1 69사단의 정찰대와 소련군 58사단 선발대가 1945 4 25일 독일 엘베강 중류 토르가우의 한 다리위에서 만났다.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 서쪽으로부터 밀어붙인 미군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 동쪽으로부터 밀어붙인 소련군의 극적인 만남이었지만 독일쪽에서 볼 때 이는 독일 분단의 시작이었다.

 

 

미군은 4 20일에 이미 마그데부르크와 라이프치히까지 진출해 있었다. 영국군도 라우엔부르크에서 엘베강을 건너 메클렌부르크 지방의 서부를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영국의 몽고메리 총사령관은 "소련인과의 악수는 가능한한 동쪽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처칠의 말대로 좀더 동쪽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얄타회담의 뜻을 존중하려는 아이젠하워에 의해 동진을 중단했다.

 

엘베강에서 처음 만난 미소 병사들은 이튿날인 26일 토루가우의 엘베강가 잔디에서 독일군으로부터 몰수한 술로 건배하며 서로 끌어안고 승리를 환호했다. 5일뒤인 4 30일 히틀러는 자살했고 5 7일 독일은 항복했다.

 



 

엘베의 (Elbe Day)’ 맹세는 하지만 미ㆍ소 냉전으로 빛이 바랬다. 이미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만난 루스벨트와 스탈린( 처칠) 약속- 독일 분할 점령 폴란드 동부의 소비에트 병합- 감안하면 그들의 맹세는 애당초 가당찮은 것이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군대는 소비에트가 붕괴된 80년대 말까지 각자 평화의 이름으로 상대의 평화에 대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