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3일

미국 은행강도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산풀내음 2017. 4. 11. 21:25

1934 5 23,

미국 은행강도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 5 23,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실제 주인공인 보니와 클라이드 이야기_Bonnie & Clyde

https://www.youtube.com/watch?v=GQRUYL2Tblc&t=144s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클라이드 배로(Clyde Barrow, 1909 ~ 1934)와 그의 애인 보니 파커(Bonnie Parker, 1910 ~ 1934)였다. 같은 시대의 전설적 갱스터 존 딜린저가 한 번의 강도짓에서 7 4000달러를 훔친 것에 비하면 1500달러를 넘지 않은 두 사람의 강도짓은 좀도둑 수준이었지만 대공황기에 서민의 착취기관이었던 은행을 공격함으로써 권위와 질서에 도전한 상징으로 인식됐다.

 

 

 

 

기억에서 사라져가던 두 사람이 되살아난 것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 아서 펜이 감독하고 페이 더너웨이와 워런 비티가 열연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원제 Bonnie and Clyde)가 개봉되면서였다. 반전시위와 히피문화가 꿈틀거리던 1960년대 말의 심리상태와 맞물려 젊은이들은 공권력을 조롱하는 주인공들의 무한 질주에 열광했고 두 사람의 화끈한 인생에 매료됐다. 내일 없는 질주, 1930년대 대공황기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영화 Bonnie and Clyde

 

1909년 텍사스의 어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클라이드는 대부분의 범죄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정교육이 소홀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총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 클라이드는 더 이상 농장을 경영할 수 없는 형편에 따라 웨스트 달라사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로 이사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고등학교 중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일을 나가게 된다. 형인 벅(Buck)과 칠면조를 훔치다 발각되었는데 이것이 시작이 된 것이다. 형이 모든 책임을 지고 교도소에 가고 출소 후 형과 친구들과 함께 본격적인 범죄의 길에 들어선다.

 

얼마 후 클라이드는 팔을 다친 여자 친구의 집에 갔다가 보니를 처음 만나게 된다. 이때 보니에게 반하게 되었다. 보니도 역시 텍사스주 출신으로 1910년에 로위나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4살 때 죽어서 어머니가 세 명의 자식을 키우며 힘든 생활을 하였다. 보니는 16세 때 전과자인 로이 소튼(Roy Thorton)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곧 끝나고 만다. 보니 역시 클라이드를 처음 만난 날 반하게 된다. 둘의 사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클라이드는 감방신세를 지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보니도 범죄의 길을 걷게 된다. 1932년부터 둘은 함께 상점과 은행을 털기 시작한다.

 

한편 클라이드는 몇몇 친구들과 새로운 갱단을 결성한다. 그런데 이들은 편의점을 털다가 첫 째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후 더욱 범죄의 굴레로 빠져들게 된다. 여러 번 새로운 범죄조직을 구성하다가 친형인 벅과 그의 부인 블랜치(Blanche)와 의기투합하여 일명 배로우 갱(Barrow Gang)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블랜치는 목사의 딸이었고 클라이드는 그녀를 매우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이후 새로운 파트너이자 마지막 파트너인 헨리 머틴(Henry Merthin)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헨리의 아버지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역사 속에서 영원히 묻히게 하는 장본인이 된다.

 

1934년 프레드 해머(Fred Hamer)라는 형사가 이 두 사람을 추적하는데 헨리의 아버지인 이반 머틴(Ivan Merthin)에게 접촉하여 두 사람을 체포하는 데에 도움을 주면 아들의 죄를 사면해 주겠다고 제안한다1934 5 19, 보니, 클라이드 그리고 헨리가 어느 한 마을에 들리는데, 헨리가 상점에 센드위치를 사러 상점에 들어간 사이 때마침 경찰차가 근처로 와 둘은 헨리를 두고 도망가게 된다. 헨리는 나와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전화에서 두 사람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대하여 이야기 하게 된다.

 

1934 5 23, 약속된 장소에 둘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이반과 경찰이 잠복해 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보니와 클라이드의 차가 나타났고 차가 천천히 정지하려는 순간 경찰의 발포가 시작되었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몸에 적중된 총알만 40발이 넘었다고 한다

 

모두가 이들을 흉악범으로 본 것은 아니다. 1930년대의 미국은 대공황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대공황의 주요원인은 주식시장의 붕괴에 있었고 일자리를 잃은 많은 노동자들은 은행, 투기꾼, 정부에 대한 비판과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실업률이 50%~80%에 이르는 등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보니와 클라이드는 절묘한 강도행각으로 정부와 은행을 희롱하며 명성을 얻어 나아갔다. 때문에 클라이드와 보니는 종종 로빈 후드(Robin Hood)와 그의 시녀인 메리안(Marian)에 비교되기도 했다.

 

이처럼 잔혹한 행위를 반복해왔던 보니와 클라이드 였지만 의외로 그들을 영웅으로 떠받들며 지지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사건을 저지르면서도 자주 가족이 있는 달라스로 돌아왔고, 도망 중에 은닉처를 제공해 기소된 사람도 23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짧지만 워낙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영화를 비롯해 연극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소재로 많이 다뤄지기도 했다. 흉악한 범죄자들이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경우다. 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행위나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극적인 강도행위를 미화하거나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