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3일

서독 연방공화국 수립

산풀내음 2017. 4. 11. 21:30

1949 5 23,

서독 연방공화국 수립

 

1945 5월 8 나치 독일제2 세계대전에서 무조건 항복 선언과 패망으로 4개국 연합군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분할 통치를 했다. 1947 4월 모스크바 외무부 장관회의가 결렬되자 미국, 영국 통합지역에서는 경제위원회를 구성했다. 1948 8월 18 사회민주당 쿨트 시마하 후보와 경쟁을 벌인 총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이 연합군 진영의 비호를 받는다고 비난하는 연설로 독일인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국민들의 인기를 산 콘라트 아데나워가 초대 총리로 당선되었다. 9월 1에는 에서 제헌의회가 구성되어 첫모임을 가졌고 콘라트 아데나워가 제헌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전쟁의 참혹한 결과, 폐허가 된 독일

 

서독의 새로운 헌법인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이 1949 5 23일 공포돼 본을 잠정 수도로 하는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됐다. 이로써 동서분열 체제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이미 1946~1947년에 미국, 영국, 프랑스의 각 점령지역에 주의회가 탄생했고 행정책임이 독일측으로 이송됐다. 통일 이전에 서독의 행정부가 위치했던 도시인 을 서독의 수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사실 정식 수도베를린(서베를린)이었고 본은 법적으로 수도가 아니었다.

 

1948년에 들어서 3국 점령지역의 통합과 연방정부의 수립이 협의되고 6월 통화개혁이 단행되자 소련은 베를린 봉쇄로 대응해 독일의 동서분단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 9월부터 헌법제정의회가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잠정헌법으로의 `기본법` 기초(起草)를 시작해 이해 5 8일 채택했다. 8 1일 최초의 연방의회선거가 행해져 9월에는 헌법제정의회의장을 맡은 기독교민주동맹의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를 수상으로 하는 연립내각이 성립됐다. 대통령에는 호이스가 선출됐다.

 

 

초대 수상은 콘라트 아데나워로 아데나워는 패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으로 재건과 부흥을 위해 기반을 마련했으며, 친서방 정책으로 외교를 위한 초석을 굳게 다져놓았다. 서독은 기존의 우수한 공업력과 과학기술 등 바탕으로 '라인강의 기적(Wirschaftswunder, Miracle on the Rhine)'을 이루었다.

 


라인강의 기적

 

이어 빌리 브란트 시기에는 '동방정책'으로 동유럽과 외교관계를 정상화시켜 독일연방공화국의 외교적 역량을 동서 유럽으로 확대했다. 과거 나치스 정권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주변 국가에 화해하고 용서를 빌어 신뢰관계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빌리 브란트 수상의 노력의 성과는 서독이 동서 유럽에서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1990 독일 통일의 기반이 되었다.

 

헬무트 수상 시기에는 경제정책에 중점을 두었지만 외교 정책에서는 사민당 정권에서 추진했던 동방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고 기존의 우방들과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인간의 가치와 회복과 인권 보호 그리고 자유를 보장하고 준법 국가를 실현하는데 기여했다. 헬무트 콜 수상 시기에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와 지속적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결과 1989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정권이 붕괴되고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주변국의 동의를 얻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했다. 이는 유럽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냉전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1990 독일 통일 당시 세계 경제대국 4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