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31일

전국에서 첫 반상회

산풀내음 2017. 4. 23. 08:34

19765 31,

전국에서 첫 반상회

 

1976 5 31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민조직의 최하부단위인 반() 구성원들의 월례회인 반상회가 열렸다. 반상회의 주요목적은 주민간의 의사소통과 국민화합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매달 말일을 정기반상일로 정한 후 처음 열린 반상회는 남자보다 여자가, 청장년보다는 노인들이 많았고 주민요망사항 토론보다는 공지사항 전달이 많은 모임이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 전국 255천 개 반에서 일제히 열린 이 반상회는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를 토론함으로써 행정기관과 주민간의 협조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빠른 곳은 저녁7, 늦은 곳은 9시에 회의가 시작됐다. 각반이 반장과 구청에서 파견된 담당관이 참석한 이날 반상회는 출석점검이 끝나고 공지사항 전달 때에는 지리함을 느끼는 듯 조는 이들까지 있었으나 `요망사항 말하기`에 이르자 회의분위기는 활기를 띠었었다.

 

 

1917년 일제는 조선인을 통제하기 위한 통치수단으로 ‘반’이라는 명칭 하에 동리의 전 주민을 구획·조직하여 운영하였다. 중국대륙 침략과 미국에 대한 전쟁을 도발(1941 12월 태평양전쟁)하면서 일제는 전시 동원체제의 원활한 수행과 조선인에 대한 통제 강화를 배경으로 반 조직을 ‘애국반(愛國班)'으로 고쳐서 주민생활 전반을 통제하고, 전시 동원하는 효율적 방편으로 이용하였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이러한 반상회 조직을 부활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였다. 그 형태는 1948년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5·10 총선거 당시에 전국의 모든 마을에 일시적으로 조직한 ‘향보단(鄕保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1950년의 5·30 총선거를 치르기 위한 목적에서 18세 이상 50세 미만을 대상으로 ‘민보단(民保團)’이라는 이름으로 재조직되었다.

 

이른바 ‘반체제 세력’의 색출과 ‘실지 회복’을 내걸고 대중 동원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전국 차원에서 ‘국민반(國民斑)’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해 왔다. 그러다가 1957년에는 ‘반’이라는 명칭이 일본색이 짙다고 하여 ‘국민방(國民坊)’으로 고쳐서 운영을 강화하였다.

 

1961 5·16군사정변 직후에는 반조직에 법적 근거를 부여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법」과 그에 근거를 둔「시·군·통·반 설치조례」가 제정되었고, ‘국민재건운동’과 결합시켜 한 때 ‘재건반(再建班)’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기도 하였다. 그 뒤 1967년 반원의 정기적 모임으로 반상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가, 유신 이후인 1976 5월 말부터 관주도로 본격적으로 반상회가 운영되었다. 처음에는 매달 말일에 개최되던 반상회 일자는 후에 25일로 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