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는 역사이야기/역사 한눈에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

산풀내음 2016. 8. 11. 08:11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

 

1957 10 4일 소련이 지름 58cm의 조그마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발사하면서 우주 시대를 열었고, 동시에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반면 미국이 같은 해 12 6일에 발사한 뱅가드 TV 3(Vanguard Test Vehicle 3)는 발사된 지 2초 만에 1.2미터 정도 솟구치는 듯 싶다가 폭발해 버렸고, 장면 TV를 통해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완전 개망신이었다. 그러나 이듬 해인 1958 1 31일 미국은 육군유도미사일청(ABMA) 주도로 준비돼 온 익스플로러 1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간신히 국제적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푸트니크 1()와 스푸트니크를 실은 A로켓()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이 될 뻔한 뱅가드 TV3 발사 모습. 케이프커내버럴 발사대에서 발사 2초만에 그대로 폭발해 버리면서 전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그러나 익스플로러 1호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미국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만든 로켓으로 지구궤도에 인공위성을 띄워 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뱅가드TV 3 사고 4개월 만인 1958 3 17. 케이프 커내버럴 LC-18A발사대에서 긴장속의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있었다. 높이 23미터, 지름 1.14미터, 질량 1만 50kg인 뱅가드1 3단 로켓의 발사는 무사히 발사대를 박차고 나갔다. 발사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후루시초프 소련수상은 스푸트니크보다 형편없이 작은 이 위성을 빗대어포도송이 위성(The grape fruit satellite)’이라고 조롱했다하지만 뱅가드 1호는 스푸트니크와 달리 태양전지가 사용된 최초의 인공위성이었고, 뱅가드 1호가 보내온 데이터는 지구의 모습이 북극은 튀어 나오고 남극은 평평해 서양배를 닮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 주었다. 또한 지구의 크기, 공기밀도, 온도, 소형운석의 영향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과학계에 공헌했다.


 

1958 3 17일 미국이 뱅가드호 발사에 성공하는 모습.

 

스푸트니크 1호는 인류 최초로 92일 동안 지구를 돈 후에 대기권에 돌입해서 소멸되었고, 스푸트니크 2호는 1957 11 3일에 발사되었다. 여기에는 개 한 마리가 탑승했으며 이 개가 그 유명한 라이카이다. 그러나 재돌입 기술의 부재로 라이카는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2호는 발사 162일 후인 1958 4 14일 대기권에 돌입해서 소멸하였다많이들 라이카가 최초의 우주비행 동물이라고 알지만, 실제로는 1946년에 미국이 V-2 로켓을 이용해 대기권 밖으로 날려보낸 과실파리라는 초파리의 일종이 가장 먼저 우주로 날아갔었다. 하지만 이건 큰 의미가 없다.


 

스푸트니크 2호와 라이카

 

이후 소련은 달 탐사계획인 루나 계획을 본격화한다. 1959 1월 루나 1호를 시작으로 1976년까지 계속되었다. 루나(Luna) 1호는 처음으로 달 궤도에 진입하였고 2호는 달 착륙에는 실패하였지만 처음으로 달에 도달한 우주선이 되었다그리고 스푸트닉 1호를 발사한지 만 2년 뒤인 1959 10 4일에 소련은 매우 중요한 임무를 띤 인공위성을 우주로 발사했다. 이것이 루나(Luna) 3호로서 달의 뒷면을 촬영하기로 했다.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달은 그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다. 따라서 지구에 대하여 달은 항상 한쪽 면만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 루나 3호가 찍은 달의 뒷면 모습은 상이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지구를 향한 달의 앞면은 달의 저지대라 하는 어두운 부분이 있지만, 뒷면은 거의 전부가 밝은 면으로 덮여 있었다


 

루나3호가 촬영한 달의 뒷면

 

소련이 사상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성공한 이후, 다음 계획은 인간을 태운 우주선을 띄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나 또는 과학 기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미국이나 소련 모두가 인정하는 공통적인 것이었다.

 

스푸트니크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미국의 NASA는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내 보내기 위해 머큐리 계획을 결정하였다. 이 계획에는 국가의 위신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당시 대륙간유도탄(ICBM)용으로 개발된 아틀라스 로켓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선 복잡한 선발 요건을 내세워 우주비행사를 뽑았다.

1959년 봄에 508명의 지원자 중에서 우주비행사 제 1기생으로 7명이 선발 되었다. 이들은 모두가 2,000 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32살 이상으로 비행사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 선발된 7명의 우주비행사들을 엄격한 훈련을 계속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1958 12 4일에는 샘이라는 원숭이를 리틀 죠 로켓에 태워 고도 88km까지 올려 보냈다.

 

그리고 미국은 이어 디스커버러 계획을 세워 하늘에 쏘아 올린 물건을 바다에서 회수하는 훈련 계획도 세워 놓았다. 또한 레드스톤과 아틀라스 로켓의 발사 실험도 계획대로 진행되어 곧 세계 최초로 우주비행사를 우주 공간에 날려 올릴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사람을 태우지 않았던 머큐리 계획의 일환인 레드스톤 로켓 1호는 1960 12 19일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다음 해인 1961 1 31일에는 원숭이 햄을 태운 레드스톤 2호가 발사되어 16분만에 우주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바다로 귀환했다이어서 레드스톤 3호에는 첫 우주비행사 세퍼드(Allan Shepard)를 태우고 같은 해 3 24일에 발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의 책임자였던 폰 브라운은 안전성에 대하여 한번 더 확신을 갖기 위해 다른 실험을 한 후에 발사하기로 했다. 따라서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 시기를 1개월 정도 연기했다.

 

바로 같은 시기에 소련은 미국과는 서로 다른 방법을 택하여 유인 우주여행을 시도하고 있었다. 유인 우주선의 첫 시도는 소련의 보스토크(Vostok) 계획이었다. 스푸트니크 계획이 몇 차례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자신감을 가진 소련은 우주 궤도상에 인간을 올려 놓으려는 계획에 들어 섰다.

 

그 첫 우주인으로 유리 가가린(Yuri Alekseyevich Gagarin 1934∼1968)이 선발되었다. 가가린은 1961 4 12일 오전 5 30분에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38m나 되는 보스토크 로켓의 꼭대기로 올라 갔다. 드디어 요란한 소리를 내고 보스토크는 튜라탐(Tyuratam) 발사기지에서 우주를 향해 발진했다. 때는 1961 4 12일 오전 9 7분이었다.

 

비행계획은 지구를 완전히 1회 선회를 한 후에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로 지구로 다시 귀환하는 것이었다. 그는 90분 동안 지구를 선회하면서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본 인류 최초의 인간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면서 "지구는 참으로 푸르다"라는 첫 말을 지구로 보냈다.

 

그의 비행은 이륙에서 착륙에 이르기까지 108분이 걸렸다. 가가린은 지구를 1회 선회하는 데 그쳤으나 그 비행에 대한 놀라움은 스푸트니크의 발사 때보다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충격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가가린은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고, 미국의 유인 우주선 계획은 그의 영광의 그늘 아래서 진행되어야 했다. 그 후 가가린은 다른 우주 비행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1968년 다인승 우주선인 소유즈(Soyuz) 계획에 참여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이 계획의 훈련 도중에 항공기 충돌로 사망했다.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소련은 1961 8 6일에 소련의 우주비행사인 티토프(Gherman S. Titov)가 가가린에 이어 우주로 올라가 하루 동안 지구 궤도상에 머물면서 먹고 일하고 잠자면서 지구를 17회나 선회했다.

 

미국의 첫 유인 우주비행은 그 선두 자리를 다시 소련에게 내어 주고 말았다. 다급해진 미국은 가가린이 우주여행을 한 지 2주일 후에 처음으로 우주비행사 세퍼드(Alan B. Shepard, 1923∼)를 태운 유인 우주선을 1961 5 5일에 우주로 발사했다. 이 우주선은 지구를 선회하지 못하고 수직으로 187km까지 올라 갔다가 15분 만에 그대로 대서양으로 귀환했다.

 

미국은 드디어 1962 2월에 첫 우주 궤도비행을 글렌(John H. Glenn, 1921∼)이 하게 되었다. 글렌은 아틀라스 로켓을 타고 지구를 세 바퀴 회전하는 우주 궤도 비행에 성공했다. 미국은 머큐리 계획을 계속 진행하여 1962 10월에는 쉬라(Walter M. Schirra, 1923∼)가 지구를 7회 선회하고, 1963 5월에는 쿠퍼(L. Gordon Cooper)가 지구를 22회 선회하고 귀환함으로써 머큐리 계획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게 우주 경쟁에서 밀리던 미국은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첫 인공위성, 첫 우주인에 우주 유영까지 이미 소련이 달성한 상황에서 소련을 앞지르기 위해서 다음 목표를 찾던 미국은 소련을 이기자는 목표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 19615월 25 국회에서 그 유명한 "10년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연설을 통해 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최초로 언급했다.

 

사실 달 또한 소련이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최초로 달에 도달한 인공 물체는 소련의 루나 2, 1959 9 13일 달에 충돌하였다. 루나 3 1959 10 7일 최초로 달의 뒷면을 관측해 사진을 전송하는데 성공했고, 루나 9 1966 2 3일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해 사진을 전송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마지막 자존심은 최초 유인 달탐사로 지켜진다. 1968 12 24일에는 아폴로 8가 세계 최초로 유인 달 궤도를 도는데 성공하였고, 1969 7 20일에는 아폴로 11가 최초의 유인 달착륙에 성공하였다. 미국의 아폴로 계획 1972 12 19아폴로 17가 귀환할때까지 계속되었다.


 

1969 7월 16 아폴로 11호를 실은 새턴 V 로켓의 발사 장면.



아폴로11()와 당시 승무원(아래, 좌로부터 암스트롱, 콜린스, 올드린)

 

소련은 꾸준히 무인 달 탐사를 진행하였으며, 1969 7 21일에는 표본 채집 임무를 띈 루나 15가 아폴로 11호와 거의 동시에 달 착륙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표면에 충돌하여 실패하기도 하였다. 1970 9 24루나 16가 최초로 무인으로 달 토양을 채집하여 귀환하는데 성공하였다.

 

인공위성이 실현되고 달에도 인간이 다녀오자 인간을 우주공간에서 장시간 머물게 할 아이디어로 이어졌는데, 이 결실이 우주 정거장이라 볼 수 있다. 역시나 이 계획들도 여전히 경쟁 중이던 미국과 소련에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소련은 달에서의 유인착륙계획은 정리하고 무인 탐사선들과 살류트 계획을 추진하여 미국보다 빨리 샬류트 1호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데 성공한다.

 

세계 최초의 우주 정거장인 샬류트 1호는 19714 19일 발사 되었다. 발사 이후 1971 4월 23 소유스 10가 발사되어 살류트 1호에 도킹 성공한다. 그러나 소유즈 우주선과 살류트 1호를 연결하는 해치가 고장이 나 우주인들은 살류트 1호로 진입할 수 없었고, 결국 성과 없이 지구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포기하지 않고 1971 6월 6 소유스 11를 발사하여 살류트 1호와 도킹을 성공시킨다. 이번에는 진입에 성공하여 세 명의 우주인들은 22일 동안 살류트 1호에 머물며 지구를 관측하고 우주 식물을 배양하는 등 우주 체류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후 살류트 2호를 제외한 모든 우주 정거장에는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떠난 우주 비행사들이 체류했다. 살류트 6호와 7호에는 여분의 도킹 포트가 있어서 다른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 정거장에 거주하는 승무원 들을 방문하거나 프로그레스 우주선이 지구 에서 별도의 보급품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살류트 우주 정거장의 크기는 이동주택 정도 였고 1982년 발사된 살류트 7호는 4년 동안 가동되었다. 이후 소련은 살류트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모듈식 우주 정거장인 미르를 건설하였다.

 

한편, 미국도 이에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아 프리덤이라는 우주 정거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 우주 정거장을 지을 때 사용할 우주선으로 우주왕복선이 개발되었으나, STS-51-L이후 이 우주 정거장 계획이 백지화되며 우주왕복선만 남게 된다.


 

살류트 우주정거장에 소유즈 11호가 도킹하기 전의 모습


소유즈가 도킹되어 있는 살류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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