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31일

생 텍쥐페리 실종

산풀내음 2017. 6. 23. 20:26

19447 31,

생 텍쥐페리 실종

 

프랑스인이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자랑하는 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1900 6월 29 ~ 1944 7월 31) 의 삶에서 비행기를 떼놓고는 온전한 이해가 불가하다. 첫 인연은 군복무 때 조종사 자격증을 따면서 맺어졌다. 첫 작품 `남방우편`(1929)과 대표작 `야간비행`(1931)은 제대후의 민간 항공조종사 경험을 살린 작품이다. `남방우편`에서는 주인공인 조종사가 사막에서 죽고, `야간비행`에서는 앞날을 예감이라도 하듯 어디론가 멀리 날아간 조종사와 지상 간의 교신이 두절된다.

 

2차 대전 발발로 프랑스 항공부대에 복귀했으나 이듬해 프랑스가 독일에게 함락되면서 미국으로 탈출, 그곳에서 `전투 조종사`와 출세작 `어린 왕자`를 출간했다. 1943년에는 43세의 늦은 나이로 재입대, 자유 프랑스군 조종사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됐다. 1944 731일 오전830, 생 텍쥐페리가 그의 고향 리옹 부근에 주둔해 있던 독일군의 이동을 추적하기 위해 정찰기를 타고 코르시카섬 미 공군기지를 이륙했다.

 

공식적으로 생텍쥐페리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시각은 1944 7 31일 오전 8 45,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때였다. 그는 그날 정찰비행 임무를 띠고 P38 라이트닝 비행기에 올랐다. 귀환시각은 오후 1시였고, 비행기에는 6시간 분의 연료만이 채워져 있었다. 그의 실종 사실이 확인된 것은 그로부터 여덟 시간이 지난 오후 2 30. 귀환 시각을 넘긴 지가 한참인데도 아무런 교신조차 없었다.

 

 

그의 실종과 관련하여서는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소문만 무성하다. 가장 정설은 독일에 의한 격추설이지만 자살설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1998 10, 대서양 연안 항구인 프랑스 마르세유 부근의 암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만에서 넙치잡이 어부인 장 클로드 비앵코의 그물에서 생 텍쥐페리의 팔찌가 발견되면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은으로 만든 팔찌에는 생텍쥐페리와 그의 아르헨티나인 부인 콘쉬엘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은팔찌와 함께 인양된 정찰기의 무선 통신기의 받침대가 생 텍쥐페리가 탔던 '라이트닝 P38'와 같은 기종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바로 2009 5 23일 마르세유 연안 프리울 섬 근처 해저 85m 지점에서 잠수부 뤽 방렐이 찾은 비행기 잔해 역시 이 기종이다. 왼쪽 랜딩기어, 터보 과급기 등의 잔해를 살펴본 전투기 전문가 필립 카스텔라노는 이 부품이 문제의 정찰기 잔해임을 확인했다. 당시 프랑스 해안에서 실종된 P-38기는 12대인데, 생 텍쥐페리가 탄 J형은 4대에 불과하며, 다른 3대는 소재가 이미 확인됐기에 신빙성은 더욱 높다. 그라나 자살인지 혹은 격추인지 아직도 확실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