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1일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해방 후 첫 금메달 획득

산풀내음 2017. 6. 28. 19:16

1976 8 1,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해방 후 첫 금메달 획득

 

1976 81,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21회 하계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65kg) 경기. 24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21명이 탈락하고 한국의 양정모(23), 몽고의 제벡 오이도프, 미국의 진 데이비드 등 3명이 벌인 결승리그는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난전이었다. 한국의 양정모는 몽골의 강호 오이도프를 맞아 3라운드 한때 8 6으로 앞섰지만 결국 810으로 역전패했다. 심판은 오이도프의 팔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오이도프는 고개를 푹 숙였고, 기쁨의 만세를 부른 것은 오히려 양정모였다. 양정모는 미국의 진 데이비스를 폴승으로 제압, 데이비스에게 판정 패한 오이도프에게 폴패만 하지 않으면 우승이 확정되어 있었다.

 

1976 8 1일 첫 금메달 확정 순간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딴 양정모 선수

 

사실 시합 전 코칭 스탭은 양정모에게 풀패만 당하지 않으면 승리한다는 점 때문에 수비위주의 경기 운영을 강하게 요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양정모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겠다면 코치의 요구를 묵살했고 오히려 풀승을 하기 위해 거칠게 몰아 부쳤다, 두 번 싸워 1 1패를 기록한 오이도프를 한 번 이기고도 싶었을 것이고, 1972년 뮌헨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어 놓고도 경비 문제로 뮌헨 행 비행기를 못 탔던 한을 멋지게 풀어보고도 싶었을 것이다. 건국 이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이처럼 어렵게, 그러면서도 극적으로 탄생했다.

 

다만 1956년 제16회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올림픽에서 권투에 출전하여 우리나라 선수 최초의 은메달을 딴 송순천 선수의 경우 억울한 면이 있다. 누가 보아도 압도적인 경기를 운영하였지만, 상대가 동독 선수였고 신판 5명중 3명이 공산권 국가 출신이었다는 것 때문에 금메달을 강탈 당한 면이 강하였다. 이승만은 은메달을 달고 돌아 온 송순천에게 “승리를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국민이 주는’ 금메달을 쥐어 주었다고 한다.

 

양정모의 올림픽 첫 금메달 획득은 1948년 런던올림픽 처녀출전 이래 32년 만의 쾌거이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이후 실로 40년 만에 맛보는 국민적 감격이었다. 해방 31년 만이요 건국 28년 만에 이룬 숙망의 달성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몬트리올올림픽 전후 두 번의 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마추어 레슬링선수로 세계 최정상에 오르며 국민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귀국 후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양정모가 “운동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얘기하자 즉시 한국체육대학교가 설립될 정도였다.

 

1976. 8. 3 21회 몬트리올올림픽 한국 선수단 개선 환영대회의 양정모 선수

 

그는 1953년 부산 출생이다.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에 감독으로도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1998 IMF로 인해 감독을 맡고 있던 한국조폐공사가 해체되는 위기를 맞았다. 2013년도에는 레슬링협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단 한 표도 얻지 못한 채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양정모 은 2015년 대한체육회에서 선정한 스포츠영웅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