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17일

클린턴 미 대통령,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시인하며 대국민 사과 성명 발표

산풀내음 2017. 7. 12. 22:42

19988 17,

클린턴 미 대통령,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시인하며 대국민 사과 성명 발표

 

『우리는 복도 뒤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는 나의 젖가슴을 만져댔고, 빨았다. 나도 그의 셔츠를 풀고 가슴에 키스했다. 그는 바지 지퍼를 내려 성기를 나의 앞에 내 놓는다. 그리고 그가 전화하는 중에 나는 오랄섹스를 해줬다. 하지만 그는 싸기 직전에 나를 떼어 놓는다.

 

그토록 부인해 왔던 르완스키와의 관계에 대하여 1998 8 17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TV로 방영된 대국민연설을 통해 ‘적절치 못한 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하고 가족, 친구와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클린턴 섹스 스캔들의 정점은 모니카 게이트, 르윈스키 게이트, 지퍼게이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모니카 르윈스키와(Monica Samille Lewinsky, 1973 - )의 관계였다. 르윈스키는 의사 아버지와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부촌 베벌리 힐스의 고급저택에서 자라났다. 그녀의 부모는 항상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쇼핑을 즐기는 등 사치가 극심한데다 권위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사이가 좋지 못해 결국 그녀가 14세 되던 해에 이혼했다.

 

1995년 루이스엔클락 대학(Lewis & Clark College)을 졸업한 22살의 모니카 르윈스키는 민주당에 많은 헌금을 제공한 월터 케이라는 친척의 소개로 그 해 7월 백악관에서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레온 파네타의 사무실에서 인턴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클린턴과 르윈스킨 둘은 서로 알고 지내게 되었고 운명의 1995 11 15일 보좌관실에 홀로 있던 르윈스키에게 클린턴이 접근하면서 본격적인 그들의 부적절한 관계는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관계는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폴라 존스(Paula Jones)의 재판을 통해 둘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폴라 존스는 1994년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로 있던 1991년 당시 자신을 성추행 했다고 고소했고, 관련 재판에서 르윈스키는 증인 중 한 명으로 채택되었다. 당시 르윈스키는 클린턴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상관에 의해 펜타곤으로 전출을 당할 정도였는데, 법정은 그녀도 혹시 성추행을 당했는지 그 여부를 물으며, 당했다면 추행의 패턴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하려 했다. 르윈스키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펜트하우스에 실렸던 폴라 존스의 사진()

 

하지만 르윈스키는 당시 누군가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싶었고 동료인 린다 트립에게 전화로 종종 털어놓곤 했다. 린다 트립은 저작권 전문가인 루시앤 골드버그를 만나 상의했고 몰래 통화 내용을 녹음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어떤 식으로든 돈이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트립은 르윈스키에게 클린턴에게서 받은 푸른색 드레스를 절대로 세탁하지 말라고 했다. 르윈스키는 그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클린턴과 관계를 맺었고 그 옷엔 클린턴의 정액이 묻게 된 것. 트립은 그 옷이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린다 트립은 빌 클린턴의 금융 및 부동산 관련 사건이었던 화이트워터를 조사 중이었던 케네스(Kenneth Winston “Ken” Starr, 1946 - ) 특별검사에게 백악관에서 일하면서 친구로 사귄 당시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가 자신에게 털어놓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성관계 고백 녹음 테이프를 전달했다. 트립에게서 테이프를 받은 뒤 케네스는 조사 범위를 확장했고 클린턴과 르윈스키를 위증죄로 고발했다. 1998 1, 마침내 그들의 관계는 세상에 폭로되게 되었다.

 

케네스 스타는 이미 화이트워터 게이트 즉 클린턴이 주지사 시절 아내의 지인인 맥두걸의 화이트 워터 부동산 개발회사에 대출을 해주도록 금융회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스캔들을 추적하던 중 덤으로 르윈스키 문제도 담당하게 된다

 

르윈스키의 증언에 의하면 1995 11월부터 1997 3월까지 그녀는 클린턴과 9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삽입 성교를 한 것이 아니기에 그 ‘관계’를 부정했다고 밝혔고, 자신은 수동적인 입장이었으며 상대방이 펠라치오 등의 행동을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후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작성하고 1998 9월 인터넷을 통해 지구촌이 공유한 ‘르윈스키 보고서’에 의하면, 클린턴은 꽤 능동적이었다. 보고서는 두 사람이 10차례 이상의 성적 관계와 폰 섹스를 즐겼다고 밝혔다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 짝사랑을 고백하며 속옷과 허벅지를 드러냈고 클린턴은 조용히 집무실로 불러들여 오럴 섹스를 요구했다. 이후 그들은 백악관의 후미진 골목, 서재, 집무실 등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갔으며, 어떨 땐 다른 방에 영부인 힐러리가 있을 때도 있었다. 삽입을 하진 않았지만 클린턴은 꽤 적극적으로 르윈스키를 애무했고 해외 순방 기간에도 폰 섹스를 즐겼다. 압권은 이른바 ‘시가 사건’이었다. 시가 애호가인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그곳에 넣었던 시가를 피우며 “맛이 좋다”고 했던 것이다.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첫 성적 만남은 그녀가 백악관 인턴 사원으로 근무하던 지난 1995 11 15일이었다. 르윈스키는 백악관 비서실장 방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짝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웃옷을 뒤로 젖힌 채 허벅지와 팬티를 연결하는 속옷 끈을 보여주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집무실로 와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르윈스키는 백악관 복도, 불 꺼진 서재, 대통령 집무실 등으로 옮겨가면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오럴 섹스를 해주었다. 클린턴은 국회의원과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도 오럴섹스는 계속됐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가슴을 만지고 키스를 했으며 팬티에 손을 넣어 성기를 자극했다.

 

1117,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피자를 가져오게 했으며 서재 뒤편으로 데려가 오럴섹스를 나눴다. 클린턴은 손과 입으로 르윈스키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서 바지 지퍼를 내려 오럴섹스를 하도록 했다. 1231, 클린턴은 서재로 르윈스키를 데려가 스웨터를 벗기고 손과 입으로 애무했다.

 

199617, 그들은 서재와 화장실에서 키스와 애무를 나눴다. 클린턴은 "오럴섹스를 해줄까?"라고 물었으나 르윈스키는 생리를 이유로 거부했다. 121, 24, 우연히 엘리베이터와 복도에서 만난 르윈스키를 집무실로 불러 오럴섹스를 했다.

 

219,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일단 매듭짓자고 통보했다. 그녀는 클린턴을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거부당했다. 대통령은 "단지 친구관계로 자신을 방문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말했다. 이날 그들은 가벼운 포옹을 했다331, 클린턴은 르윈스키를 다시 불렀다. 그녀는 클린턴에게 서류를 제출하면서 넥타이를 선물로 건냈다. 그들은 서재 옆 복도에서 애무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음부에 시가를 삽입했다. 그는 시가를 빼내 입에 물고는 "맛이 좋군"이라고 말했다.

 

47,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르윈스키가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너무 자주 눈에 띄자 그녀를 백악관에서 국방부로 발령했다. 이후 두 사람은 그 해 남은 기간 동안은 신체적 접촉을 피하는 대신 폰섹스를 즐겼다. 클린턴은 르윈스키가 국방부로 배속된 4 4~5차례 전화를 걸었고 매달 2~3차례 통화를 나눴다. 클린턴은 1996년 대선 당시 부인 힐러리 여사가 동반하지 않는 유세 때는 르윈스키에 대한 전화를 잊지 않았다.

 

719, 클린턴은 "좋은 아침이야, 하루를 멋지게 시작해 볼까"라고 말문을 열고 "나는 너무 흥분했어"라며 폰 섹스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521, 75일께, 1022, 122일 폰 섹스를 나눴다. 클린턴은 심지어 체코, 볼리비아 등 외국을 방문하는 중에도 르윈스키와 폰 섹스를 즐겼다.

 

1997년 초,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다시 성접촉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주로 주말에 이뤄졌다. 두 사람은 집무실 또는 서재에서 15~20여 분 동안 함께 했다. 르윈스키는 밸런타인데이였던 214일 워싱턴포스트지에 클린턴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광고에 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시를 인용한 이 광고는 클린턴도 읽어보았다.

 

228, 그들은 다시 서재에서 만났다. 클린턴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머리핀과 월트 휘트먼의 "잔디잎"이라는 책을 선사했다. 두 사람은 오럴 섹스를 했다. 그녀는 클린턴이 사정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클린턴의 정액이 이때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었다.

 

329, 마지막으로 성접촉을 했다. 2주 전 플로리다에서 다리를 부상당한 클린턴은 깁스를 한 상태였다. 클린턴은 손을 르윈스키의 속옷 속으로 넣었다. 르윈스키는 속옷을 입지 않았다. 르윈스키는 "그의 성기와 나의 성기가 접촉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삽입은 없었다. 그녀는 클린턴이 사정할 때까지 오럴 섹스를 했다. 클린턴은 "외국대사관이 그의 전화를 도청하는 것으로 의심한다"며 두 사람의 관계를 은폐해줄 것을 요구했다. 르윈스키는 클린턴과의 가진 성접촉에서 2차례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524, 클린턴이 르윈스키에게 "더이상 관계를 지속할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녀는 1997 10월까지 클린턴에게 관계를 계속할 것을 요구했지만 클린턴은 이를 거부했다.

 

이전부터 추파를 던지는 르윈스키

A photo taken in 1995 shortly after Clinton and Lewinsky began their affair when she came to intern at the White House

President Bill Clinton goes into hug 23-year-old Monica Lewinsky with whom he had an affair during his first-term in the White House


 

푸른색 드레스의 DNA 검사까지 이뤄지면서 궁지에 몰린 클린턴은 결국 1998 8 17일 대국민 성명을 통해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시인하게 되었다. 이후 미국 하원의회에서 클린턴에 대한 탄핵이 발의되었고 투표 결과 가결되었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를 사적인 행동이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중범죄로 판단한 것이다. 11개의 탄핵 혐의가 제기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위증을 통해 사법 과정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강력한 정치 공세였다. 하지만 1998 11월 의회 중간 선거에서 클린턴을 몰아붙이던 공화당은 참패했고 이후 탄핵안은 상원의회에서 부결되었다.

 

탄핵을 면하긴 했지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미국 사회에 묵직한 영향을 끼쳤다.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스캔들 기간에 지독할 정도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스타 검사와 공화당의 공세를 통해 클린턴의 사생활은 정치적 의도 속에서 까발려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 성인 남녀의 합의하에 이뤄진 사적인 성행위에 대해,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건 마녀사냥과 다름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래리 플린트 같은 사람은 “사람은 언제나 성에 대해 거짓말한다. 클린턴의 위증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며 클린턴을 옹호하였다.

 


놀림의 대상이 된 클린턴

 

르윈스키는 사건 이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토크쇼의 특급 게스트가 되었으며 모니카 스토리라는 책을 발간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2000년엔 다이어트 전문 회사인 제니 크레이그의 CF 모델로 화제를 모았다. 6주 동안 20킬로그램 가까이 감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사교계 인사가 되었고 방송계의 셀러브리티로 각광받았으며, 클린턴의 정액이 묻은 드레스는 경매에서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핸드백을 비롯 패션 사업에 뛰어들어 유명세를 톡톡히 이용해 돈을 벌었다.

 

그리고 폴라 존스 사건은 4년 동안 이어졌던 법적 공방 끝에 지난 1998년 결국 85만 달러( 9억 원)의 합의금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존스는 “사실 제대로 돈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어마어마한 법정 비용을 지불하고 나자 자신에게 남았던 액수는 고작(?) 151천 달러( 17천 만원)에 불과했다는 것.

 

폴라 존스와 르윈스키 이외에도 클린턴과의 섹스 주장은 많았다. 1997년 11월에 변호사인 돌리 카일 브라우닝 1959년부터 30년 넘게 클린턴과 내연 관계였다는 것을 폭로했다. 그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반자전적 소설을 출판하려 했지만 클린턴이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폴라 존스가 위자료를 받은 이후 클린턴의 열성 지지자인 캐서린 윌리는 1993년에 클린턴이 자신을 백악관에서 애무했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4년 동안 클린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힘들어하기에 이마에 키스한 정도”였다고 맞섰다이어 후아니타 브로드릭은 클린턴이 아칸소에서 검찰 총책임자로 일하던 시절인 1978년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당시 주지사 선거 운동을 돕고 있었고 직무실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다. 브로드릭의 폭로가 터지자 클린턴은 영부인 힐러리와 잠시 별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아칸소 출신으로 1982년 미스 아메리카였으며 이후 배우로 활동 중이던 엘리자베스 워드 그레이슨은 1983년에 클린턴을 우연히 알게 되어 단 한 번이지만 관계를 가졌다며, 힐러리 클린턴에게 “당신의 남편과 섹스를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클린턴 부부와 부동산 사업과 금융 관계로 얽히며 그들의 친구인 짐 맥두걸과 수전 맥두걸 부부는 화이트워터 스캔들의 장본인이 되어 모두 유죄 판결을 선고 받았는데, 짐 맥두걸은 자신의 아내가 클린턴의 정부였다는 걸 폭로했다. 미스 아칸소였고 토크쇼 진행자였던 샐리 퍼두도 클린턴이 주지사 시절에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모델 및 여배우로 활동 중이었던 제니퍼 플러워스는 1992년 클린턴과 12년간 관계 가졌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 이전에 펜트하우스 잡지에 누드 모델을 하기도 했다.

 

Dolly Kyle Browning(L) and Elizabeth Ward Gracen(R)


클린턴과의 관계를 주장하는 여인들

네바다주에서 창녀로 일하고 있는 Barbie Girl(), Ava Adora()와 함께 2015 3 LA 자선 모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클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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