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8월 29일,
소련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
소련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소련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사막에서 1949년 8월 29일 행해졌고 실험은 성공했다. 1945년 7월 16일 사상 처음으로 원폭 실험에 성공해 4년간 독보적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소련은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미국의 핵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끌어들였고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소련의 핵 개발은 공산정권에게는 힘이 되었지만 특히 1947년 마셜 플랜에 따라 재건 중에 있는 유럽에게는 충격과 공포의 소식이 되었다.
RDS-1, the first Soviet atomic test.
원폭실험은 9월 3일 미 공군의 장거리 정찰기가 캄차카반도 동쪽의 북태평양 상공에서 대기 중에 다량의 방사능을 감지함으로써 알려지기 시작했고, 트루먼 대통령은 9월 23일 이 사실을 발표했다. 침묵을 지키던 소련도 9월 25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에서는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과 같이 소련에게 핵 기술을 넘긴 자들에 대한 검거에 혈안이 되었고 또한 1950년에는 공산주의자 색출에 열을 올린 매카시즘이 시작되었고 이는 1954년까지 지속되었다.
소련의 핵 실험 성공의 직접적 피해자는 한국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영국, 소련간에 1945년 7월말에 열린 포츠담회담 당시만 해도 회담에서 주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었다.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에 뛰어드는 대가로 홋카이도의 반을 넘겨달라고 했지만 미국은 거절했고 그 힘의 근원은 핵무기였다. 결국 소련은 홋카이도 대신 한반도를 분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핵실험 성공으로 미국의 독점적 우위는 무너졌다. 결국 1949년까지 남침에 반대했던 스탈린은 핵 실험 성공 후 마음을 바꾸어 남침을 승인하게 되었다.
이후 핵무기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미국과 소련에 이어 영국, 프랑스, 중국이 잇달아 핵실험에 성공하였고 나아가 인도, 파키스탄도 핵보유국이 되었다. 핵 보유와 함께 핵 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단에 대한 경쟁도 치열해 졌고 전세계는 공포의 균형의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소련은 연방 해체 때까지 467회의 핵실험을 했고 2000년까지 전세계적으로는 2056번의 핵실험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62년도에 가장 많은 핵 실험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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