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경남

우포늪을 거쳐 가야산 해인사를 찾아가다

산풀내음 2018. 4. 26. 20:53

통도사 다음 일정으로 내가 선택한 곳은 창령 화왕산의 진달래 군락지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본 화왕산의 진달래는 억새 밭과 어울려져 장관이었다. 옥천매표소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따라 4-5시간 정도로 이어지는 진달래 산행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덤으로 창령하면 떠오르는 우포늪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 금상첨화라 할 수 있었다. 

숙소는 우포늪 인근에 있는 우포생태촌 유스호스텔로 잡았다. 창령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가격도 저렴하고 시설도 그러저럭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짐을 풀고 아내와 함께 2시간 정도 우포늪을 돌아 다녔다. 한적하면서도 평화로운 우포늪의 풍광에 취해 넋을 잃고 돌아 다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돌아 왔다. 그런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잦은 기침과 함께 피곤함이 거세게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일기예보에 오후에는 미세먼지가 나쁨에서 보통으로 좋아진다고 하여 화왕산 산행을 강행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산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내 몸에서 느끼는 미세먼지의 농도는 더 강해졌다. 아쉬웠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아들이 있는 전주로 방향을 틀었다. 가는 도중 '해인사'라는 이정표가 눈에 확 들어왔다. 가고자 하는 곳이 화왕산에서 해인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늦은 오후의 우포늪


우포늪의 새벽



해인사는 순응, 이정 스님에 의해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한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의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법보사찰이다. 해인사의 이름도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되었는데 해인삼매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고 한다. 해인사는 창건 이래 우리나라 대표적 교종인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정한 최초의 총림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UNESCO에 의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팔만대장경의 가치가 인정되어 1995년에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에는 대장경 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통도사에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가 있다면 해인사에는 가야산 '소리(蘇利)길'이 있다. 소리란 우주 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를 의미한다. 소리길은 홍류동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약 6km의 탐방로이다. 소리길에는 주요 문화자원인 농산정과 더불어 칠성대, 낙화담 등 가야산 19명소 중 16개 명소가 있다.

소리길에 대한 정보 없이 도착한 홍류동 매표소. 삼삼오오의 사람들이 매표소 아래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뭔가 지나쳐 왔다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차에서 내려 주변의 안내도를 살펴 보았다. 내가 있는 지점은 소리길의 중간 정도되는 지점으로 해인사 입구까지 약 2.5Km되는 지점이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미 주차비와 입장료를 지급한 상황이라 여기서부터 소리길을 걷기로 했다. 1시간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경치에 취해 어슬렁어슬렁 오르니 2시간이나 걸렸다. 통도사의 무풍한송로와는 또다른 느낌의 길이었다. 통도사 무풍한송로가 깊은 사색의 느낌이라면 해인사 소리길은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가 연상되는 길이라고나 할까....







해인사 소리길


해인사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조그마한 국사단(局司壇)이 있다. 그곳에슨 소원나무라는 것이 있는데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은 가야산 산신(山神)이 깃든 곳으로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 이처럼 이곳은 가야산에서 신령스럽고 영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소원을 적고 국사단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면 소망하시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소원나무에는 소원을 적은 노란색 소원지가 빽빽하게 달려 있다. 그냥 재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부처를 섬기는 장소에 이런 것이 있는 것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해인사의 소원나무


조금더 올라가면 대적광전(大寂光殿)이 나온다. 화엄종의 중심법당인 대적광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하는 대웅전(大雄殿)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을 좌우에 봉안한다. 하지만 해인사의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좌우에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 대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모시고 있다. 참고로 대적광전은 화엄경을 근거로 한다는 뜻에서 화엄전(華嚴殿) 또는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는 뜻에서 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한다.

대적광전에서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고 있는데 내 앞으로 노란 머리의 나이 지긋한 여성이 지나간다.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자리를 틀고 앉아서는 내가 108배가 끝날 때까지도 명상에 잠겨있었다. 불교에 관심이 있는 서구인들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 들어와서 스스로 명상에 잠긴 모습은 다소 의와했다. 108배를 마치고 나도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이마와 콧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법당 안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산사의 봄바람은 이곳이 무릉도원이란 생각이 들게한다.







기도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대적광전 뒤에 있는 소위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고려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으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앞의 수다라전(修多羅殿)과 뒤의 법보전(法寶殿)이 나란히 있다. 경판전안에 직접 들어가서 고려대장경을 볼 수는 없지만 통풍을 위해 만들어 둔 나무 격자창살 사이로 어렴풋이 대장경을 볼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 올라갈 때 미루었던 길상암에 잠깐 들렸다. 길상암은 가야산 중 묘길상봉 천진보탑 천불동에 천불 부처님이 상주하신다 하여 영암노스님과 명진은사스님의 기도정진에 힘입어 이곳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한 적멸보궁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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