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경남

용의 꼬리, 남해 용문사.

산풀내음 2019. 8. 20. 23:46



남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3대 관음기도도량 중에 한 곳인 보리암일 것이다. 밤샘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보리암을 찾은 것은 기도의 영험도 영험이겠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오늘은 새벽 하늘에 낀 안개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보리암에서 맡는 새벽 공기는 더없는 행복감을 주기에 모자라지 않았다.

보리암 새벽 예불을 마치고 아내와 내가 찾은 곳은 남해의 또다른 기도처인 남해 용문사였다.


남해 용문사(龍門寺)는 신라시대 창건된 3대 용문사, 즉 양평 용문사, 예천 용문사, 그리고 남해 용문사, 중에서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사찰이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장기도처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3대 지장기도도량이라고 하면 연천 원심원사, 선운사 도솔암 그리고 이곳 남해 용문사를 일컫는다. 주장하는 분에 따라 남해 용문사 대신 서산 개심사를 3대 지장기도도량이라고도 한다. 그냥 이 모든 곳을 대표적인 4대 지장기도처라고 하는 것이 좀더 타당해 보인다.

하여튼 남해에서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구원자이신 지장보살(地藏菩薩)님도, 천수천안으로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곳이라 할 것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이름 붙어진 호구산(虎丘山) 자락에 있는 용문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께서 보광산(금산)에 건립한 보광사를 그 전신으로 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금산에 첨성각을 건립하고 선교의 문을 열었다가 조선 현종(1660년) 때 백월당 학섬대사가 현재의 터로 절을 옮겼다고 한다. 스님들은 절을 옮겨 첨성각과 탐진당, 적묵당 등을 세웠다가 현종 7년(1666년)에 비로소 대웅전을 짓고 절의 이름도 용문사로 불렀다. 산 아래에 용연(龍淵)이 있어 지은 이름이다. 숙종 34년(1708년)에는 부속 암자인 염불암이 중창되고 백련암도 신축됐다고 전한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전각은 용문사의 관문인 천왕각이다. 조선 숙종 28년(1702년)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천왕각에서 돌다리를 지나면 정문인 봉서루다. 대웅전과 마주 보는 형태의 이 건물은 전면 7칸에 측면 4칸이다. 대웅전(경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은 팔작지붕의 목조 와가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대웅전 우측의 명부전(문화재자료 제151호)은 원효대사가 직접 조성하고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지며, 명부전에 모신 지장보살도 원효대사가 손수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영산전과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신 칠성각, 보물 1446호인 괘불탱화 등이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장기도처답게 남해 용문사에는 명부전 지장보살 이외에도 지장보살상이 더 있다. 대웅전에서 나와 부속암자인 염불암과 백련암 방향으로 조금 걸어올라가면 바로 영산각이 나오고 이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산아래에 지장보살좌상의 조성이 한창이다.




그리고 대웅전에서 염불암과 백련암의 반대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사찰 주차장 인근 산기슭에도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