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강원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그리고 구봉대산에 다녀 오다.

산풀내음 2018. 5. 7. 20:10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돌아와 세운 기도도량들 중 가장 마지막에 창건된 법흥사 적멸보궁에 다녀왔다.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 당시 이름은 흥령사였고 도윤국사와 징효국사 때 크게 산문이 번성하였다. 진성여왕 4년(891년)에 소실되었고 고려 혜종 1년(944년)에 중건되었다.


부처님을 찾아가 뵙고 인사를 드리기에 앞서 법흥사 적멸보궁 터를 보호하는 우백호의 역할을 하는 구봉대산(九峰臺山)을 다녀왔다. 사자산의 연장선상에 있는 구봉대산은 명칭에서 풍겨나듯이 9개의 봉우리를 가진 산이다. 재미나는 것은 9개의 봉우리마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인간의 태어남과 유년, 청년, 중년, 노년의 단계를 거쳐 죽음 그리고 다시 태어남의 과정의 뜻이 담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른 봉우리 이름 

구봉산은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봉우리의 이름을 지었다. 제1봉은 양이봉이다. 양이봉은 인간이 어머님 뱃속에 잉태함을 나타낸다. 제2봉 “아이봉”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남을 나타내며, 제3봉 “장생봉”은 인간이 유년, 청년기를 지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제4봉 “관대봉”은 인간이 벼슬길에 나아감을 의미하며, 제5봉 “대왕봉”은 인간이 인생의 절정을 이룬 뜻을 의미한다. 제6봉 “관망봉”은 지친 몸을 쉬어감을 의미하며, 제7봉 “쇠봉”은 인간의 병들고 늙음을 의미하며, 제8봉 “북망봉”은 인간이 이승을 떠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제9봉은 “윤회봉”으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를 둔 것이다.

법흥사 주차장에서 시작해 1봉에서 9봉을 거쳐 일주문을 지나 다시 법흥사 주차장까지 오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으로 전체 거리는 약 8.5km에 소요시간은 약 4시간 정도의 코스다. 주차장에서 약 30분 정도 산을 오르면 '마지막 계곡'이란 이정표와 함께 '수통에 물을 채우세요'라는 안내문이 나온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목을 축여 보면 왜 물을 채우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발에서부터 올라오는 시원함과 목을 넘어가는 계곡물의 상쾌함은 1봉을 향해 가고자 하는 등산객의 발목을 잡는다. 




여기서부터 1봉까지는 500m는 아주 약간의 고행길이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가진 기쁨 속에서도 출산에 이르기까지 어려움과 힘듬이 있는 것과 같이 .... 

1봉 양이봉에 오르면 확트인 조망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갓 잉태한 상태라 아직 세상이 볼 수 없는 듯하다. 2봉에 이르면 이젠 태어났으니 뭔가 보이겠지 했지만 역시 그냥 숲길의 한가운데이다. 아직 어려서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3봉에 이르렀다. 눈이 확 트인다. 소나무와 바위의 어울림 속에서 사자산과 그 속에 품어져 있는 법흥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산 바람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미움과 원망의 마음을 날려보내는 듯하다.

4, 5, 6, 7봉을 지나 8봉에 이르면 이곳이 구봉대산의 정상이기도 하고 인간이 이승을 떠나는 북망봉이기도 하다. 8봉에서 하산은 시작된다. 9봉까지 가파르게 내려와 본격적인 하산을 하면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급경사의 하산 길을 경험하게 된다. 이 길이 맞겠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길도 간혹 나온다. 토요일 정오 경임에도 불구하고 산행내내 만난 사람들이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니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어서인지 이정표가 곳곳에 잘 구비되어 있지도 않다. 그냥 산악회 등에서 표시해 둔 것을 이정표 삼아 하산을 하였다.


한참을 내려오니 시원한 계곡과 함께 비교적 잘 나있는 길이 나온다. 약간의 걱정이 안도로 바뀐다. 여기에서 20분 가량 걸어가니 일주문이 나왔고 일주문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더 가니 법흥사 주차장이 나왔다. 다시 한 번더 올 기회가 있다면 오늘과 반대방향으로 산행을 할 것 같다. 1봉에서 시작해 차례로 인생의 의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지만 9봉에서의 하산길 경사가 너무 심하고 게다가 돌 산이어서 무릎에 상당한 무리가 가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장율사께서 마지막으로 세우신 보궁으로 향했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원음루를 지나 법흥사 경내로 들어서면 좌측에는 극락전이 나오고 맞은 편에는 신라말 때의 승려로 흥녕사(법흥사의 옛이름)에서 선종의 법문을 크게 일으켰던 징효국사의 부도(스님의 사리를 모신 곳)가 있다. 이곳을 지마면 숲길이 나오는데 여기가 법흥사를 담고 있는 사자산이다. 길 양 옆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를 벗삼아 오르면 하나씩 전각이 나오고 조금 더 오르면 마침내 적멸보궁이 나온다. 


이름의 뜻처럼 이곳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고, 그 뒤에는 토굴이 있다. 그래서 법당 내에 불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내어 토굴과 사리탑이 보이도록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리탑에 진신사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장율사가 사리의 영원한 보존을 위해 사자산 어디엔가 사리를 숨겨뒀다고 전해진다. 그 옆으로 얼핏 무덤처럼 보이는 것은 바위굴이다. 이곳에서 자장율사가 도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화강암으로 단을 쌓아 돌방 안으로 들어가 관람할 수 없지만, 바닥은 평평하고 벽면은 둥그스름하게 모줄임해 가며 만든 방이라고 한다. 돌방 안의 크기는 높이 160㎝, 너비 190㎝정도로 한 사람이 앉을 정도의 공간이 된다.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주변에 가시덤불을 두르고 정진했다고 한다.



적멸보궁에서 기도를 마치고 이곳에서도 작은 등공양을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징효국사의 부도에 들려 합장으로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