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강원

봉정암 가는 길.... 1)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다.

산풀내음 2018. 5. 23. 21:47

신라 자장율사께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대 적멸보궁 참배 일정 중 마지막으로 봉정암을 다녀왔다. 봉정암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1,244m에서 위치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이다. 봉정암 특히 부처님의 뇌사리를 모신 곳으로 불자들에게는 최고의 기도처이기에 언제나 참배객들로 분비는 곳이다. 이런 신성한 곳을 방문하여 참배한다는 것은 불자로서 매우 설레이는 경험이지만 등산에 능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5월 20일 일요일 새벽 5시 30분, 들뜬 마음으로 백담사가 있는 용대리로 출발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가는 첫버스가 8시라고 되어있어 속도를 조절하며 달렸지만 워낙 고속도로와 국도가 뻥 뚤려 있어 용대리에 도착한 시간은 7시 10분. 그런데 바로 10분 전에 첫 버스가 출발했다고 한다. 아마도 특별히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승객이 다 차면 출발하는 시스템인 듯하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버스에 승차해 조금 기다리니 버스는 금새 만석이다. 용대리 계곡을 끼고 나 있는 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달려 백담사에 도착했다. 

 TIP

나름 사전 정보를 조사해 보고 간다고 했지만 하나 놓친 것이 있었다. 버스정류장과 연결된 주차장은 1일 주차비가 8천원이다. 나의 경우와 같이 2일을 주차하면 16천원인데, 돌아올 때 지나치다가 우연히 본 주차장은 1일 주차비가 3천원이었다. 내가 주차한 곳에서 아래쪽으로 걸어서 불과 1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 미리 알았다면 만원을 절약할 수 있었을텐데. ㅠㅜ

백담사는 다음 날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들러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로 하고 - 사실 다음 날 오세암을 거쳐 오는 여정이 생각보다 험난해서 백담사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탈진 상태라서 다시 둘러보기로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에 예를 올리고 봉정암으로 향했다. 그때 시간은 8시 20분.

참고로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란 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되어 여러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다가 정조 7년(1783년)에 백담사라고 개칭하게 되었다. 백담사는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에서 시작한 봉정암 길은 영시암을 조금 지나 두 갈래로 나뉜다. 한 갈래는 수렴동대피소를 거쳐 구곡담계곡 길을 따라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이고, 다른 한 갈래는 오세암을 거쳐 5-6개의 능선을 지나 봉정암에 오르는 길이다. 갈림길에는 설악산 탐방코스 지도와 함께 배낭의 무게를 잴 수 있는 기구가 있다. 최대한 배낭의 무게를 줄인다고 줄였지만 사진기와 삼각대 그리고 1박을 위한 기본적인 것이 필요해서인지 배낭과 카메라의 무게를 합하니 생각보다 무거운 8kg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는 가방의 무게가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봉정암에서 소청, 중청을 지나면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이 나온다. 백담사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는 거의 평지에 가까워 누구나 무리없이 갈 수 있다. 수렴동대피소에서 관음폭포와 쌍용폭포까지는 이전보다는 약간의 난이도가 있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아도 무난할 정도로 평이한 코스라 할 수 있다. 쌍용폭포를 지나면 '아! 산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오는 정도이지만 주면의 경치에 빠져 어려운줄 모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근데 봉정암을 500m 남겨두고 가파른 길이 눈 앞에 턱하고 나타난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두발보다는 네발로 움직이는 편이 더 낫다라고 해야할까? 그래서인지 이곳을 '해탈고개'라고 한다. 아마도 설악산 대청봉까지 오르는 길 중에서 가장 경사도가 높은 코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힘든 코스도 500m 전체는 아니고 초반 약 300m 정도이고 나머지 200m는 다소 무난한 정도라 할 것이다.

이렇게 어영부영하면서 봉정암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 꼬박 4시간 40분이 걸렸다. 아내와 함께 이동하다보니 다소 속도가 지연된 부분도 있고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기 위해 보낸 시간도 있어서 보통 이야기하는 소요시간에 비해서는 조금 더 걸린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무리 등산을 못하는 분들이라도 백담사에서 봉정남까지는 5시간이면 충분하고 산을 좀 타는 분이라면 3시간 30분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점심 공양 시간이 지나 도착했지만 여전히 점심 공양을 할 수 있도록 암자에서 배려해 둬서, 아내와 함께 미역국에 밥을 조금 말아 끼니를 때우고 종무소로 향했다. 미리 예약해 둔 방을 배정받고, 가족등도 함께 신청했다. 철야기도를 위해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라 편하게 누워 잘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방과 힘들게 올라온 신도들에 대한 배려가 품어 나오는 따뜻한 방은 마음에 쏙 들었다. 방에 짐을 부리고 아내와 나는 대청봉으로 향했다.

여러 후기를 보니 봉정암에서 대청봉까지는 올라가는데는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내려오는 시간 등을 감안해 서둘러 대청봉으로 향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탐방안내도에 따르면 봉정암에서 소청봉까지는 소위 해탈고개라고 하는 곳보다 더 힘든 것으로 나와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슷한 수준 또는 조금 덜 힘든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봉정암에서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했고, 나의 어깨를 짓눌러 온 배낭을 봉정암에 두고 온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그러하다. 소청대피소를 지나 소청봉에 오르니 저 멀리 중청과 대청봉이 보였다.

처음 든 생각은 "꼭 가야만 할까?"였다. 아내에게 넌지시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어. 우리가 오늘 가고자 한 곳은 봉정암이기 때문에"라고 했더니, 망설임도 없이 "내가 언제 또 오겠어. 온김에 반드시 올라가야지"라고 한다. 아내의 한 마디 답변에 두번 다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어쩌면 마지 못해 대청봉으로 향했다. 코스 중 가장 힘든 해탈고개와 소청봉까지의 코스를 이미 지나왔기 때문일까, 대청봉까지의 코스는 생각보다는 쉽게 느껴졌다. 중청에서 대청까지의 코스도 어럽다고 되어 있지만 목표가 처음부터 훤히 보이니 죽도록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1시 30분에 봉정암에서 출발해 정확하게 2시간 만인 3시 30분에 대청봉에 도착했다. 감격과 감동의 순간이었다. 바람은 심하게 불었지만 날씨는 더없이 화창하였다. 멀리 속초 앞바다도 보인다. 그리고 굽이굽이친 설악산의 능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소청대피소에서 바라본 설악산

소청에서 중청으로 가는 길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길




몸을 가누기 힘든 대청봉의 강한 바람에 5월의 한가운데 있다는 느낌보다는 차라리 늦겨울 또는 초봄의 느낌이 들었다. 센 바람에서 느껴지는 추위와 저녁 예불 시간에 늦지 않고자 하는 바램으로 서둘러 봉정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봉정암을 얼마 남겨두고 올라갈 때 놓쳤던 봉정암의 불뇌보탑이 나뭇 잎 사이로 눈에 들어온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외로움과 신비로움이 가슴에 와 닿는 듯하다.




2편) 봉정암에서 부처를, 오세암에서 관세음보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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