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서울

할머니 기일을 맞아 삼각산 도선사에 다녀오다. _ 20180608

산풀내음 2018. 6. 9. 22:22

금요일에 모처럼 휴가를 냈다. 아내와 함께 설악산 신흥사에 가서 기도도 하고 인근에서 캠핑도 하면서 밤하늘 별들도 보고자 했다. 근데 아내가 그날이 바로 할머니의 기일이라고 한다. 휴가 일자를 바꿀까도 했지만 할머니 기일은 맞아 왠지 할머니께 '용서'를 빌고 싶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그토록 보고자 했었던 증손자, 둘째 정범을 보여드리지 못한 점'이 늘 죄송스러웠다. 경남 산청 고모집에 계시던 할머니를 찾아 뵙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기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렇게 할머니가 떠나실 때까지 증손자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백운봉, 인수봉, 국망봉 세봉우리의 삼각산(지금의 북한산)에 자리잡은 도선사에서 할머니께 용서를 그리고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도하고 싶었ㄷ. 우이동 계곡은 족히 4-5번은 갔지만 그리고 그곳에 도선사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른 일로 도선사에 가는 기회는 번번히 놓쳤다. 아침부터 목욕탕에 가서 몸을 깨끗히 하고 도선사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대로 차를 몰고 가다보니 연꽃위에 앉아 계시는 석가모니상이 나온다. 이곳이 도선사 입구구나 하는 생각에 차를 주차하는데 다른 차들이 그냥 그곳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네비게이션도 아직 도선사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다시 차를 몰고 더 올라갔다. 사천왕문(당시엔 일주문인 줄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 확인해 보니 사천왕문이었고 도선사에는 따로 일주문이 없었다)을 지나니 오른편으로 도선사를 거쳐 간 선사들의 부도탑들과 지장보살입상이 있고 조금 더 가니 도선사 절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선사는 862년(경문왕 2)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전한다. 도선국사는 이곳의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 큰 암석을 주장자로 갈라 마애관음보살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1863년(철종 14) 김좌근(金左根)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으며, 1887년(고종 24)에는 임준(任準)이 오층탑을 건립하고, 탑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였다. (출처 : 도선사 홈페이지, http://www.doseonsa.org/introduce/introduce.asp)

차를 주차하고 종각이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종각을 조금 지나면 12지신상이 잘 부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지옥에 머물고 계시는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이글을 쓰면서 안 사실이지만 이 계단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사리탑과 삼천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그냥 지나쳐 온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대웅전 앞마당은 분홍빛 연등으로 가득하다. 사시기도 시간이 다가와서인지 평일치고는 많은 신도들이 대웅전에 기도를 올리고 있다. 도선사의 대웅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왼쪽에 지혜의 상징인 대세지보살이 오른쪽에는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이 협시불로 계신다. 대웅전 끝 모퉁이에 자리잡고 혼자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할머니께 사죄도 올리며 또한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기도를 올리고 있으면 나의 바램을 부처님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계실 때 큰 손주면 모든 것을 내어주셨던 분께 20년 가까이 지나서 사죄를 올리면서도 나의 욕심이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먼저 자리잡는 것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기도를 마치고 사리탑과 마애관세음보살이 계시는 석불전으로 향했다. 석불전을 둘러싼 담벼락의 '참회도장'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진심된 마음으로 그 동안의 죄를 참회하라고 부처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석불전은 관세음보살 기도영험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석불은 암벽을 깎아 만든 마애불이다. 높이 20m, 암벽에 8.43m 크기로 새겨진 관세음보살입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호)으로 옆엔 진신사리탑이 있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 말엽 철종 14년 동호 스님은 운수행각을 하며 관세음보살 염불수행 중이었다. 그러다 도선사에 인연이 닿았고, 석불전에서 부처님 광명을 친견하고 수기를 받으리라 발원하며 10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지성으로 기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위가 금빛으로 빛났다. 홀연 나타난 한 도승은 주장자를 들고 남쪽을 가리켰다. “왜 저쪽으로 가보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예삿일이 아니었다. 스님은 남쪽으로 길을 떠나 폐사가 된 남지장사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방광하는 부처님 사리와 치아를 발견하고, 소중히 모시고 와 석불전에 7층 석탑을 세우고 봉안했다고 한다. (출처 : 법보신문, 2012.05. 08, '서울 삼각산 도선사')

석불전에는 더 많은 신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비집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음에 다시 찾아뵙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목탁소리와 함께 사시예불이 시작되었다. 


절 뒷편으로 가니 일심광명각과 9층탑이 있고 그 뒤로 16나한님이 모셔져 있다. 인적드문 그곳에서 석불전에서 들여오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그냥 있었다. 그리고 반야굴로 갔다. 삼성각 아래에 있는 반야굴에는 3분의 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쌍용그룹 창업주 고 김성곤 회장이 석굴암을 참배한 뒤  감동을 받아 세분의 보살을 모셨다고 한다. 중앙엔 십일면관세음보살 오른쪽엔 잔을 든 문수보살, 왼쪽이 경책을 든 보현보살이다.

구층탑

반야굴


명부전 아래에 있는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근처 의자에 앉아 잠깐 사색에 빠졌다. 그때 나 보다는 어려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20대 여성 두분의 도움을 받아 샘터로 와서는 샘터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계셨다. 도움을 주는 분들로 아주머니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냥 자꾸 눈길이 갔다. "따님들하고 같이 오신 것인가?" "몸이 좀 불편하신가?".... 그 순간 다시 일어서서 움직이셨다. 눈이 보이시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결코 어둡고 불행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지장보살님을 모시는 명부전

명부전 앞에 있는 수령 200년이 넘은 보리수나무, 이 나무 아래에 절을 찾은 중생들을 목을 축이기 위한 샘터가 있다.


두 분의 도움을 받아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 분이 향한 곳은 석불전이었다. 순간 "저분은 어떤 기도를 할까?"하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참회하기 위해 그리고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도하기 위해 왔음에도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한 바램을 부처님께 이야기하고 있는 나 자신, 누군가를 비교한다는 것이 참 어리숙한 것이지만 저분이 가지지 못한 건강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리고 어쩌면 평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듯한 나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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