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경기

친구들과 함께 다녀 온 석모도 보문사와 민머루 해변_201806013

산풀내음 2018. 6. 15. 22:51

자치 단체장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던 6월 13일. 오후에 대학 친구들이랑 석모도로 출사가 있어서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투표를 마쳤다. 사진을 찍고 관심을 가진지는 꽤 오래된 일이었지만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찍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올해 2월부터 이었던 것 같다. 혼자서 자료를 찾아보고 필요하면 물어보기도 하면서 사진을 배웠지, 사진을 찌고 배우기 위해 누구랑 함께 다녀보지는 못했기에 이번 출사는 나에게는 의미있는 처녀 출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2시 30분쯤 석모도로 향했다. 다소 흐린 날씨에 아름다운 저녁 노을에 대한 기대감은 접었지만 첫 출사라는 설레임과 예상과는 달리 뻥뚤린 도로에 마음은 더없이 설레였다. 3시쯤 석모도에 도착해서 친구가 소개해 준 Restaurant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참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Restaurant이었지만 음식 맛은 그닥이었기에 여기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음식맛이 그럴 수도 있고 또 한편 그대로 일하시는 분들은 친절하셨기에 혹 누가 될 수도 있기에.

제일 먼저 우리가 간 곳은 석양으로 그리고 관음보살 기도처로 유명한 보문사였다.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위치한 보문사는 낙산사 사내암자인 홍련암,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관세음보살 성지) 중에 하나이다. 여기에 여천의 향일암을 더하여 4대 관음성지라고도 한다. 보문사는 사찰이 위치한 낙가산은 관세음보살께서 상주하신다는 인도의 보타낙가산에서 유래하였기에 그것에서부터도 관음성지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보문사는 다른 관음성지와는 또 다른 특징들이 많다. 

관음성지는 일반적으로 주불전에 관세음보살을 모신다. 예를 들어 홍련암은 암자의 전각 자체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본사인 낙산사에도 해수관음상이 있다. 남해 보리암의 경우에도 주불전인 보광전(普光殿)에 모신 주불은 서천축 아유타국 허공주가 모시고 왔다는 관세음보살(좌보처 남순동자, 우보처 해상용왕) 삼존상(三尊像)이다. 보리암 역시 홍련암의 경우와 비슷하게 해수관음상이 따로 남해 바다를 향해 모셔져 있다. 향일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향일암의 주불전인 원통보전 역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외부에 남해 바다를 향해 해수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참고로 이 세곳 모두 일출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보문사의 주불전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극락보전으로 좌우 협시불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입 버릇처럼 말하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돌아가 의지한다)'에서와 같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항시 함께 하는 분으로 본다면 관음성지임에도 불구하고 관세음보살의 주불전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모시는 주불전으로 하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하다.



참고)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부처다. 다섯 구원불 가운데 하나로 '무한한 수명'이라는 뜻을 가졌다.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 복을 누리며 살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역사상의 부처인 석가모니와 관세음보살은 그가 현화된 것으로 간주된다.

대신 보문사에서는 극락보전 옆에 나있는 419개의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면 마애관세음보살좌상(돌에 세겨진 관세음보살님의 앉아 있는 모습)을 뵐 수 있다. 관음기도를 위해 온 대부분의 신도들이 지성으로 기도를 올리는 곳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눈썹바위 아래의 바위면에 새겨 모셨는데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이다. 관음좌상의 모습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을 받쳐 들과 연화대좌 위에 앉아 계시고 있다. 특히 이곳은 서해 최고의 낙조로 꼽히기도 하는 석모도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홍련암, 보리암, 향일암이 일출의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하면 이곳 보문사는 일몰의 명소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 동안 마애석불좌상(마애관세음보살좌상)은 보문사의 역사와 또는 최소한 조선시대 이전에 조각된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여겼었다. 오래 전부터 보문사가 관음성지였다면 당연히 관세음보살을 형상화한 무엇인가는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마애불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하면서 마애불은 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1928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문사의 설명에 따르면 보문사 마애불은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웅님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님이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보문사에 대해 잠깐 돌아보면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중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 하였고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보문사라 이름 짓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보문사는 관음보살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보문사에는 석굴사원이 있는데 일화에 따르면 창건 후 14년 뒤인 649년 신란 선덕여왕 때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하다가 그물에 석불상들이 걸려 올라왔는데 이를 석굴사원에 모셔 두었다고 한다. 석굴사원에 모신 불상은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미륵보살과 나한상 등이다. 석굴사원은 경주 석굴암,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 속초 개조암 등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에서 몇 안되는 예로 보문사를 방문하는 또다른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문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와불전과 오백나한이 있다. 와불전은 천명이 앉을 수 있다는 데서 명명된 '천인대' 위에 조성된 전각으로 열반 당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와불전 바로 옆에는 오백나한상과 33관세음보살 사리탑이 있다.

나한이라고 하면 일체의 번뇌를 끊고 끝없는 지혜를 얻어 세상 사람들의 공양을 받는 성자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부처님의 직제자 뿐 만 아니라 역대 여러 나라의 존경받던 수많은 고승대덕들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당부로 다음 부처가 올 때까지 사람들이 섬길 수 있도록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하는 석가모니의 가까운 16제자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500 나한까지 늘어났다.

개인적으로는 보문사에서 좀더 오랜시간을 있으면서 지는 해도 보고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사진도 찍고 싶었지만, 함께 온 친구들도 있기에 내 뜻만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어 보문사 앞 파전 집에서 막걸리 한잔씩을 가볍게 걸치고 우리는 석모도의 작은 항구로 그리고 이어서 민머루 해변으로 이동했다. 지는 해 속에서 사진도 찌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흐린 날씨에서 오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의미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