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경기

원효대사와 자재암

산풀내음 2018. 8. 16. 23:56

'경기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소요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자재암을 다녀온지 벌써 10일이 넘게 흘렀다. 약간 게을러진 탓도 있겠지만 최근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와 '인간 붓다' 등 불교교리 서적에 푹 빠진 탓도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자재암과 원효대사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신라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 세속의 인연을 맺은 후 다시 수행에 전념하고자 아름다운 이곳에 초막을 지은 것이 그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이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그분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면, 원효의 출가 연령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15세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30세쯤 되던 때에 당시 당나라의 현장법사(玄奘法師)께 가르침을 받고자 의상(義湘)과 함께 길을 가던 중, 동굴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주변을 뒤척였는데, 웬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서 거기에 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아, 그 물 참 달고 시원하다." 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서 주변을 보니 그가 마셨던 건 해골 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 그걸 알게 된 원효는 구토를 했는데, 직후 썩은 물도 목이 마를 때 모르고 마시니 달았다는 것에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고 탄식하기를 『한생각 일으키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한생각 꺼지면 갖가지 법(法)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여래(如來)께서 삼계(三界)가 허위인 것이니 오직 마음의 조작이라 함이라 하심이 바로 이것이로구나!』고 하였다.

그 뒤 분황사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다. 내생을 주관하는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겠다는 의미로 누구나 아미타불을 외우면 서방정토에 이를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대사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누가 나에게 도끼를 빌려주리! 하늘 고일 기둥을 베이려 한다(수허몰가부아작지천주(誰許沒柯斧我斫支天柱)』라고 했고, 이 노래를 들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은『그 스님께서 귀부인을 얻어 현자(賢子)를 낳으려는 뜻이다. 나라에 성인(賢人)이 있다면 더 큰 이익이 어디 있겠느냐?』하였다. 그때에 요석궁(瑤石宮)에 과부로 있는 공주(公主)가 있었다. 태종은 원효를 찾아들이라고 명령하였는데 마침 원효가 남산에서 내려와 요석궁(瑤石宮) 앞 문천(汶川)다리를 건너오다가 물에 떨어졌다. 사신은 그를 데리고 요석궁(瑤石宮)에 인도하여 젖은 옷을 벗겨 말리고 새옷을 갈아 입히고 왕명으로 공주로 하여금 법사를 모시게 했다. 법사(法師) 또한 인연에 응하여 과연 귀자(貴者)를 낳은 것이 곧 설총이다.

원효스님과 관음보살

원효 스님이 요석공주와의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오로지 수행일념으로 이곳을 찾아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 하던 때였다. 어느 폭풍우 치는 깊은 밤 선정에 든 원효 스님은 자신의 존재마저 아득함을 느끼며 무서운 내면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때 밀려오는 폭풍우 소리에 섞여 황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 순간 원효스님은 눈을 번적 떴다.

"원효 스님, 원효 스님, 문 좀 열어주세요"

스님은 망설이다 문을 여니 비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면서 방안의 등잔불이 꺼져버렸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찾아와서…하룻밤만 지내고 가게 해주세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인을 보고도 스님은 선뜻 들어오란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여인의 간곡한 애원에 스님은 여인을 토막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스님은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옮기자 비에 젖어 와들와들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여인을 보지 않으려고 스님은 눈을 감았지만 비에 젖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 몸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있던 스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 내 마음에 색심이 없다면 이 여인이 목석과 다를 바 있으랴.'

그리고는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지만, 풍만한 여체를 대하자 스님은 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하여 순간 여인을 침상에서 밀어냈다.

'나의 오랜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허물 수야 없지. 해골은 물그릇으로 알았을 때는 그 물이 맛있더니, 해골을 해골로 볼 때는 그 물이 더럽고 구역질이 나지 않았던가. 일체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으니 내 어찌 더 이상 속으랴'

스님은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는 온전하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다시 여인에게 다가가서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 하였다. 여인의 풍만한 육체는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한 생명일 뿐이었고 스님은 마치 자기 마음을 찾듯 준엄했다. 여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린 여인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앞에 일어나 앉았다. 순간 여인과 자신의 경계를 느낀 스님은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스님은 간밤의 폭우로 물이 많아진 옥류천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무한한 희열을 느끼고 있는데, 여인도 목욕해야겠다며 옷을 벗고는 물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 햇살을 받은 여인의 몸매는 눈이 부셨고 스님은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그 느낌을 자제하고 항거했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순간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혼돈이 일어났고,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스님의 귓전을 때렸다. 스님은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을 거듭거듭 뇌이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리자 폭포소리가 들리고 캄캄했던 눈앞의 사물이 제 빛을 찾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옳거니, 바로 그거로구나.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그 도리!' 스님은 물을 차고 일어나서 발가벗은 몸을 여인 앞에 아랑곳없이 드러내며 유유히 걸어 나왔다.

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생겨 가지가지 법이 낳은 것이니,

心滅則種種法滅 마음이 멸하면 또 가지가지 법이 없어진다.

원효의 이 말에 여인은 미소를 머금고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띤 보살이 되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다.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임을 이내 깨달은 원효스님은 더욱더 수행에 전진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그곳에 암자를 세우고 자재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출처 : 자재암 홈페이지, http://www.jajaeam.org/

소요산 주차장을 조금 지나면 요석공주별궁지가 나온다. 요석공주가 홀연 떠나버린 원효를 찾아 아들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으로 들어와 이곳에 별궁을 짓고 살았던 곳이다. 그리고 공주는 아침저녁으로 산위에 올라 원효가 정진하고 있는 원효대를 향하여 절을 올렸는데, 그 때 절을 올렸던 곳이 공주봉이란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왼편으로 원효굴과 원효폭포가 나온다. 원효굴에는 석조 약사여래불이 봉안되어 있다. 다시 108계단을 올라가면 원효대사가 치열하게 수행했던 원효대가 나온다. 원효대를 지나 암벽 사이에 난 숲길을 오르면 마침내 자재암이다.


원효굴

108계단

원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