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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다_20180624

산풀내음 2018. 6. 26. 21:18

설악산 신흥사를 다녀온 다음 날, 아내와 나는 부처님 진신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는 금강산 건봉사에 갔다. 신라 자장법사께서 중국 오대산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져와 나누어 봉안한 다섯 곳, 통도사, 정암사, 법흥사, 상원사 그리고 봉정암을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면 이에 금강산 건봉사와 태조산 도리사 그리고 비슬산 용연사를 더하여 8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참고로 건봉사는 해발 910m의 건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지만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금강산 건봉사라고 한다.

건봉사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치아사리와 관련하여 건봉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건봉사에 봉안된 진신 치아사리는 신라시대 자장법사가 636년(선덕왕 5년)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문수보살전에 기도 끝에 얻은 진신사리 100과중 일부입니다. 자장법사는 643년 귀국하여 이 사리들을 통도사, 월정사, 법흥사, 정암사, 봉정암에 나누어 봉안하였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통도사에 난입하여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를 탈취해 가버렸습니다. 그 뒤 사명대사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일본에 잡혀간 포로 송환등의 문제로 일본에 건너가게 되었는데, 그 때 통도사 사리를 되찾아오게 됩니다.

사명대사는 왜적이 파괴한 통도사 금강계단을 중수하여 사리를 다시 모셨는데, 그 가운데 12과를 나누어 맨 처음 의승군을 규합하였던 인연이 있는 건봉사에 봉안하였습니다.(석가여래치상탑비) 이것은 귀중한 진신사리가 다시 약탈될 경우를 우려해 나누어 분장한 것입니다.

사명대사에 의해 봉안된 진신 치아사리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986년6월 사리탑이 도굴되면서부터입니다. 1986년 6월10일, 민통선 이북지역에 있어 출입하기 어려운 건봉사에 도굴꾼 일당이 잠입했습니다. ‘모대학 건봉사 복원조사단’임을 사칭한 위장출입증으로 검문소를 지났으나 그 다음부터는 무사통과. 그들은 이틀간 ‘사적 조사단’ 운운하면서 제초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일당은 금속탐지기로 문화재의 유무를 확인한 다음 13일 아침 2시간에 걸친 도굴 끝에 치아사리를 훔쳐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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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6월 하순부터 도굴꾼들의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 “사리를 돌려주라”고 꾸짖는 꿈을 꾸게 되었고 일당은 하루도 아니고 며칠간이나 계속된 꿈의 계시에 불안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7월14일, 일당 중 주범 ㄱ씨는 결국 공범을 시켜 서울 봉천동 ㄱ호텔로 찾아가 훔쳐간 사리 12과 가운데 8과를 맡겨놓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4과는 공범 중 한 명이 가지고 달아나는 바람에 증발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건봉사는 되찾은 부처님 진신사리 8과 가운데 3과는 적멸보궁 석탑에, 나머지 5과는 법당에 봉안하여 참배불자들의 친견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불자들은 부처님의 꾸짖음으로 일부나마 사리를 되찾은 이 사건을 불사리의 이적(異蹟)이라 할만 합니다. 사리4과의 행방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에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찰은 더러 있으나 건봉사처럼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된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건봉사 진신 치아사리는 사명대사가 봉안한 사실이 분명하므로 그 가치가 더욱 높은 셈입니다. 치아사리는 세계에 15과 뿐인데 건봉사에 12과 스리랑카(불치사)에 3과가 보관된 희귀한 보물이라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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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geonbongsa.org/5 [건봉사]

건봉사는 휴전선 부근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큰 사찰로 조선시대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지금은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이지만 한 때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사실 법흥왕 7년이면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이고 아도화상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건봉사를 남한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 사찰이라고도 한다. 고려말 나옹선사가 크게 중수하고 건봉사라 개명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사찰로 발전하였다. 일제강점기까지 금강산, 설악산 일대를 관장하는 전국 31본산의 하나였지만, 한국 전쟁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고, 휴전선 부근에 위치했던 까닭에 폐사지처럼 되었다가 최근에 대웅전 영역을 중심으로 복원되고 있다.


건봉사는 사명대사와 인연이 깊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맨 처음 의승군(義僧軍)을 규합하였고 이곳에서 그 승병들을 훈련을 시켰다. 또한 왜란 당시 일본이 도둑질해 간 통도사의 부처님 진신를 되찾아와 그 중 12과를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그런 연유에 건봉사 부도탑 옆에 사명대사의 동상이 있고 불이문 옆에는 기념관이 세워져있다.

건봉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1920년대 세워진 불이문이 우리는 맞이 한다. 한국전쟁 때 유일하고 불타지 않은 건봉사 불이문은 다른 사찰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4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올려 놓은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기둥의 주춧돌에는 사찰을 수호하는 금강저를 새겨 사천왕이나 금강역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건봉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불이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새롭게 지어진 범종각이 나오고 범종각 뒷편으로는 아직 복구되지 않은 절터에 잡초들만 무성하다. 지난 날의 영화가 부질없음을 보여주는 듯하여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또 한편 산사의 적막과 고요에서 나를 성찰해 볼 수 있는 아늑함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조금 더 올라가면 개천을 건너는 능파교가 나오고 이를 건너면 건봉사의 주법당인 대웅전이 나온다. 잔잔하게 흐르는 관세음보살 노래와 함께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대웅전 석가모니께 인사를 올리고 대웅전 옆 종무소로 사용되는 전각에 가서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친견했다. 이유를 모르겠다. 가슴 벅참과 함께 그냥 눈물이 난다.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친견할 수 있는 곳, 

부처님 진신사리의 촬영은 금한다고 하여 찍지 않았다.


능파교를 다시 건너 적멸보궁으로 갔다. 가는 길가의 작은 연못 속에서 갓 핀 연꽃이 아름답다. 

高原陸地 不生蓮花 (고원육지 불생연화)

卑濕淤泥 乃生此花 (비습어니 내생차화)

높은 언덕이나 육지에는 연꽃이 나지 않고

낮고 습한 진흙에서 이 꽃이 난다

                                          - 유마경 -

연꽃은 낮고 더러운 습지에서 잘 자란다. 

이는 불교가 가르치는 이상적인 삶은 세상을 벗어난 산중에서 누리는 신선 같은 삶이나 부유하고 넉넉함에서 누리는 삶에서 있지 않고, 어렵고 힘들고 고통받는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다.

- 무비스님의 '진흙소가 물위를 걸어간다'에서 -


연못 앞에는 템프스테이에 사용되는 전각이 있고 전각 뒤로 멀리 산신각이 있다. 무슨 간절함이 있는지 보살 한 분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 템프스테이로 사용되는 건물을 끼고 돌아가면 적멸보궁이 나온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전각들이 채 복구가 되지 않아 이전의 웅장함은 없지만 오히려 한적한 산속에 여유롭게 갖추어진 전각들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건봉사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찰이지만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산사의 한적함 속에서 참 나를 찾고자 한다면 꼭 들러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