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경북

갓바위부처님이 계신 선본사를 찾아서 ...

산풀내음 2019. 9. 30. 10:10


태풍이 지나간 후이어서인지, 더없이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관음휴게소에서 차를 주차하고 10여분 올라가면 선본사가 나온다. 선본사의 가람 배치는 다른 사찰과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본사의 주불전인 극락전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팔공산 갓바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이 계신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하단, 중단에 각각의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선본사 일주문에서 우측으로 가면 선본사 극락전이 나오고 극락전으로 가기 전 입구에서 좌측으로 산을 조금 올라가면 삼층석탑이 있다.


(출처 : 선본사 홈페이지)



일주문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오면 극락전이 있는 선본사에 다다른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일주문에서 좌측방향으로 가면 기도객들이 일년내내 문전성시를 이루는 갓바위로 가는 길이다. 길 양편으로 석등이 잘 구비되어 있어 늦은 저녁에도 걱정이 없을 듯하다. 일주문에서 30분 정도 계곡을 따라 난 산길을 오르면 갓바위에 도달하는데 중간에 하단과 중단이 있다. 하단에는 삼성각, 범종루 그리고 기도객들을 위한 공양간이 있다. 삼성각의 우측으로 위치한 범종루에는 밀랍과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과 같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약사여래범종이 하루 두 번 삼라만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범음(梵音)을 울리고 있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2시 방향에 선본사 본찰이 있고, 10시 방향이 갓바위로 올라가는 곳이다.


정면에 범종각이 있고 좌측이 삼성각, 우측이 공양간이다. 뒷편에는 약수가 있어 기도객의 목마름을 달래준다.



하단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대웅전이 있는 중단이 나온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좌우 협시로 문수, 보현 보살님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 뒤로 대웅전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고, 신중탱화와 십육나한 탱화가 모셔져 있다. 중단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 있는 작은 굴에는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상단은 선본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일명 갓바위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약사여래 부처님의 앞쪽 공간에 기도객을 위한 야외 법당처럼 쓰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유리광전(琉璃光殿)을 두어 내부에 약사여래 삼천원불을 모셔두고 우천이나 추위에도 법당에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약사신앙의 대표적인 성지이며 기도도량인 선본사는 그 창건이나 연혁에 관한 내용은 거의 전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만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동화사(桐華寺, 창건 당시에는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를 창건한 극달 화상(極達和尙)께서 동화사보다 앞선 소지왕 13년(491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져 온다.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 법흥왕 14년인 572년인 점을 들어 창건설화를 부정하는 견해가 많다. 여기에 더하여 극달화상이란 스님에 대한 기록이 정사류(正史類)에 해당하는 역사서나 주요 불교 문헌에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관련 일부 문헌에서 창건주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선본사의 유물로 창건 시기를 유추해 볼 수도 있는데 대표적인 선본사삼층석탑(禪本寺三層石塔, 경상북도유명문화재 제115호)과 갓바위 부처님 모두 8세기 초반으로 추정되고 있기에 선본사의 창건 시기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냥 8세기 초반 이전에 누군가에 의해 창건되었을 것이라고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하듯 창건시기를 확인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는 부족하다 할지라도, 불교 공인 이전에 사찰이 수립되었을리 없다는 견해에 대하여는 동의할 수 없다. 공인 이전에도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께서 이곳 신라에서 포교활동을 펼치셨고,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경북 구미에 도리사를 신라 눌지왕 당시인 417년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비록 지금의 모습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491년에 선본사가 세워졌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

선본사 자체보다 오히려 더 알려진 것은 보물 제431호 갓바위 부처님(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해발 850m의 팔공산 남쪽 관봉 정상에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관봉을 '갓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불상의 머리에 마치 갓을 쓴 듯한 넓적한 돌이 올려져 있어서 유래한 것이다. 갓바위 부처님은 일반적으로 약사여래부처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것이 있는데 이를 약함으로 보아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미륵부처님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기도 후 약사여래부처님의 손을 카메라를 이용하여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하였지만 접근이 혀용된 범위에서는 부처님의 왼손바닥 안에 있다고 하는 약함을 확인할 수 없어 다소 아쉬웠다.

갓바위 부처님의 조성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문헌이 없기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선본암중수기문’에 소개된 설화에 따르면 638년 원광법사 수제자 의현 스님이 어머니 명복을 빌기 위해 팔공산 관봉에 약사여래좌상(갓바위 부처님)을 조성했다고 한다.  대웅전 벽화엔 의현 스님이 부처님을 모신 얘기가 새겨져 있었다. 영험하게도 스님이 불사를 하던 중 추위에 떨면 큰 학이 날아와 날개를 펴 덮어주고, 상처 입으면 약초를 물고와 치료해 줬다고 한다. 불사를 마쳐갈 무렵 원광법사가 입적하자 의현 스님은 다비식을 마치고 점안의식을 위해 다시 팔공산으로 올랐다. 놀랍게도 이미 완성된 부처님은 갓을 쓰고 계셨단다. (출처 : 법보신문)

​​

하지만 갓바위 부처님의 얼굴부분이 입체적이면서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대좌 형식이 고식인 점은 8세기 조성된 불상의 특징적 요소이며, 거불이면서도 얼굴이나 항마촉지인의 손 조각이 섬세하고 상체의 입체감이 살아 있는 점 등을 들어 9세기 전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주장도 있다.

갓바위 부처님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초 석굴암이 본격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이와 동시에 제2 석굴암이라고 하는 하지만 석굴암보다 더 빠른 시기에 조성된 군위 삼존불이 발견되면서 이다. 군위 삼존불의 발견으로 팔공산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때 갓바위 부처님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갓바위 부처님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다독여 주시고 계신다. 특히 안양의 법련화 보살이 앉은뱅이가 될 뻔한 딸을 낫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보살은 1987년 다리가 마비된 딸을 지게에 싣고 올라와 갓바위 부처님께 매달렸다. 딸 다리를 낫게 해달라며 떼쓰듯 억지 부리며 눈물만 흘린 채 해보지도 않은 3000배를 올렸다. 탈진한 채 부처님을 바라봤다. 부처님은 남 속도 모르고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이 부처님도 영험이 없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딸의 다리가 풀렸다. (출처 : 법보신문)

선본사에는 주목받는 또 하나의 유물이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15호로 지정된 선본사 삼층석탑이다. 팔공산에 있는 석탑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8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친 몸을 핑계로 직접 올라가 보진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선본사 극락전에서 바라본 삼층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