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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부처님과 부부라는 설화가 있는 약사여래불을 뵈러 불굴사로 가다.

산풀내음 2019. 10. 1. 22:16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신 불굴사 약사여래부처님


선본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갓바위 부처님과 부부라는 설화가 있는 약사여래불을 뵈러 불굴사로 갔다. 선본사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불굴사는 선본사가 양의 기운이 있는 곳이라면 이곳은 음의 기운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양과 음의 조화가 이루어지면, 즉 갓바위 부처님과 함께 이곳 약사여래불께도 함께 기도를 올리면 기도의 효력이 더 크게 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한다.

팔공산 자락의 무학산(舞鶴山)에 위치하고 있는 불굴사(佛窟寺)는 668년 경 옆에 있는 석굴에서 원효대사가 처음으로 수행한 장소로 이것을 계기로 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옥희(玉熙)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신라 화랑들의 성지로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역시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유신은 수련을 하던 중 난승이라는 스님에게 삼국통일의 신표인 보검을 받고 힘을 얻어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창건 당시 50여동의 전각을 비롯해 12개의 부속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으며 스님과 불자들의 공양을 위한 물레방아가 8대나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법당과 요사가 불에 타버렸고, 조선 영조 12년(1736년)에 큰 비에 따른 산사태로 사찰이 매몰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의 불굴사는 송광사에 있던 노스님이 현몽(現蒙)을 받아 중건을 시작해, 철종 11년(1860년) 유혜(有惠), 쾌옥(快玉)​ 두 스님에 의해 중창된 것이다. 1939년에는 은해사의 경파 백현(鏡波伯鉉) 스님이 중창하였고, 1988년 원조스님이 인도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져와 본래의 대웅전 자리에 적멸보궁을 지었다.​

초기에 사리탑은 적멸보궁 내에 모셔졌으나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참배할 수 있도록 적멸보궁 밖으로 모셨다. 기도도량 불굴사의 영험함은 사리탑을 옮겨 모시는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는데, 1988년 인도에서 모셔온 진신사리 7과가 이전 과정에서 25과로 증과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기도와 수행자들의 간절한 염원에 부처님도 감동하신 듯 하다.




적멸보궁 뒷편에 모셔진 사리탑


주요전각으로는 적멸보궁 이외에도 약사보전 그리고 2018년에 세워진 관음전 등이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9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 429호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높이는 7.43m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으로 상륜부 일부가 결실되어있다. 삼층석탑 앞 석등 역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절 입구에 있는 범종각


석조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 불굴사의 약사보전은 불굴사의 대표적인 기도처이다. 화강암 바위에 연화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석조약사여래불을 모신 후 전각을 세웠기 때문에 부처님이 서있는 자리는 바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약사보전은 동쪽을 향해 건립됐지만 약사여래불은 동북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약사여래불은 전각의 정문이 아니라 좌측문을 바라보고 서 계신 것이다.

이곳에 모셔진 약사여래부처님은 조선 영조 때 송광사 노승이 현몽을 받아 산사태로 매몰된 것을 발굴한 불상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땀을 흘리는 이적(異蹟)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아픈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해 병을 치유하는 예가 빈번하여 영험 많은 부처님으로 알려져 있다.

불굴사의 약사여래불은 족두리를 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약사여래불은 어머니에 주로 비유된다. 불굴사 약사여래불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서로 마주보고 있는 선본사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상으로 두 부처는 서로 부부라는 설화가 있다. 그래서인지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쪽 마을 이름이 ‘양지리’이고, 불굴사 약사여래입상이 있는 곳을 ‘음지리’라 불린다. 또한 갓바위 부처님을 양 그리고 불굴사 약사여래부처님을 음으로 하여 서로 음양의 조화를 이뤄 하루 두 군데서 기도를 하면 반드시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약사보전. 약사여래불은 기도객이 서 계신 좌측문을 향해 서 계신다.


절의 좌후방 1백m에는 높이 30m, 폭 50m정도의 절벽바위가 있는데 중간에 석굴이 있다. 이곳이 불굴사의 유일한 사내암자인 홍주암(紅珠庵)이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수행했고 그래서 원효암이라고도 한다. 홍주암에서 홍주는 '붉은 구슬'이라는 의미로 태양을 지칭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의 일출은 어는 곳에 비길바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도 17세인 소년시절 현몽을 받고 이 석굴에 들어와서 기단을 쌓고 기도 사일 만에 선인을 만나 비법을 배워 삼국을 통일하였다고 한다. 홍주암에 가려면 먼저 '행복 108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모든 번뇌망상에서 벗어나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홍주암 가는 길


석굴 중앙바위에는 좌정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양각해 모셨다. 석굴 왼편에는 ‘아동제일약수(我東弟一藥水)’라는 작은 샘이 있는데 원효대사와 김유신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청수다. 1976년 홍주암 수리 중에는 청동불상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좁은 곳을 통과해야만 최고의 약수를 만날 수 있다


그 맛은 천하일품이지만 쫄쫄 흐르는 물의 양이 너무 적어 아쉬웠다. 그래도 기다려 먹을만한 가치는 있는 듯하다.

수령을 알 수 없는 나무가 참배객들의 머리를 스스로 숙이게 한다. 참배를 할 때 스스로 겸손해지라고 하는 가르침이 아닐까?


홍주암에서 다시 철계단을 오르면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이 있다. 나반존자는 500나한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면서 말세 인간의 복전이 되어주겠다고 원력을 세운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