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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17암자 순례 11) 통도사

산풀내음 2019. 10. 25. 17:21

이번 순례의 또다른 목적은 여러 번 계획을 잡았지만 태풍으로 번번이 무산되었던 통도사 금강계단(국보 290호) 친견이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통도사 금강계단이 으뜸이 아닐까 생각된다.


통도사 금강계단. 부처님의 원력으로 세세생생 동안 지은 수많은 업보가 모두 소멸되길 기도해 본다.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해인사, 송광사와 더불어 삼보사찰 중에 하나인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세존의 의발(衣鉢)과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 귀국해 모셔 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어서 불보사찰이라 한다. 또한 대장경을 최초로 봉안한 사찰도 이곳 통도사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그 사리는 8개의 탑에 나누어 봉안되었는데, 100년 후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왕은 8개의 탑에 봉안된 사리를 84,000개의 탑에 나누어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데 사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스스로의 깨우침을 중시하는 것이 불교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길을 인도하는 방편이라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사상이지만, 그 길을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궁극의 지향점은 알지만, 또한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의 의지처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중생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곧 부처님으로 여기기 때문에 어쩌면 최고의 의지처가 부처님 진신사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장은 진골 출신 관리 호림공(虎林公)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속명은 김선종랑(金善宗郞)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장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어느날 아버지 김무림이 관세음보살 앞에서 자식이 생기기를 빌며 만약 "아들을 낳는다면 출가시켜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발원하자, 그날 자장의 어머니가 별이 품 속에 별이 날아드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했다고 한다.​

통도사 자장암 자장전에 모셔진 자장율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자 자장은 전 재산을 희사하여 원녕사(元寧寺)를 세운 뒤 출가한다. 출가 직전 선덕여왕은 자장에게 태보(台輔) 관직에 오를 것을 종용하고 이를 듣지 않고 출가하면 목을 베겠다고까지 했다. 이때 자장은 “나는 차라리 하루 동안 계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백년을 파계하여 살기를 원치 않는다(吾寧一日持戒而死, 不願百年破戒而生)”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목숨을 내놓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선덕여왕 5년(636년)에 왕명으로 제자 승실 등 10여명과 당나라로 가서 종남산 운제사에서 3년 동안 수도한다. 이후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의 현신을 만나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 등을 받았다.  이후 화엄종의 두순(杜順)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선(道宣)에게 배운 뒤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왕의 귀국 요청으로 장경 1부와 불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귀국 당시 모셔온 사리 등은 셋으로 나누어 황룡사와 태화사 탑에 먼저 각각 봉안하고, 선덕여왕 15년(646년)에 통도사를 창건한 후 계단을 쌓아 나머지를 모셨다. 이 중에서 황룡사 구층탑에 봉안된 사리는 몽고의 침입 때 소실되어 행방이 묘연하고, 태화사에 봉안된 사리도 임진왜란때 사찰이 불타고 약탈되면서 왜놈에게 약탈당했다가 돌아와 여러 곳에 분산 봉안되었다고 한다.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사리와 가사의 내용은 ‘삼국유사’ 권3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조에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자장법사가 가지고 돌아온 것은 부처님의 머리뼈, 어금니, 사리 100톨, 부처님이 입으시던 붉은 비단에 금점 박은 가사 한 벌이었다. 그 사리를 셋으로 나누었는데 한 등분은 황룡사에 있고 한 등분은 태화사탑에 있으며 한 등분은 가사와 더불어 통도사 계단에 있다.”​​

귀국 후 신라 최고 승직인 대국통(大國統)에 임명된 자장은 선덕여왕의 명으로 분황사에 주석하면서 황룡사 9층탑(도판 5)을 건립할 것을 선덕여왕에게 아뢴다. 선덕여왕이 뭇신하를 불러 의논하니 모두가 이르기를 백제에서 장인을 청해 와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보배와 비단으로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청한다.

처음 찰주(刹柱, 탑의 꼭대기에 세운 장대)를 세우는 날, 백제 아비가 꿈을 꾸니 본국인 백제가 멸망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음 속에 의심이 생겨 손을 놓았더니 홀연히 대지가 진동하며 날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한 노승과 장사가 금전(金殿, 金堂)문에서 나온다. ​겁에 질려 기둥을 세우자 노승과 장사가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백제 아비는 마음을 고쳐먹고 그 탑을 이루어 놓았다. 찰주기(刹柱記)에서 말하기를 철반(鐵盤) 이상의 높이가 42척, 이하의 높이가 183척이라 하고 있다. 자장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서 받아온 사리 100톨을 삼분하여 그 3분의 1을 기둥 속에 넣었다. 이때가 선덕여왕 14년(645년)이었다.

(출처 : 신동아, "선덕여왕과 자장율사의 합작품 황룡사 구층탑의 비밀")

또한 자장은 왕명에 따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통도사(通度寺)를 창건하고 그곳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였다. 이외에도 자장은 전국 각처에 10여 개의 사탑을 건조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장은 개인적으로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강원도 인제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정선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네곳에도 봉안하셨는데, 우리는 통도사와 함께 이곳들을 5대 적멸보궁이라 일컫는다.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영축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산의 이름을 인도의 영축산과 같은 이름으로, 절은 통도사라 이름을 지었다.

​절 이름 ‘통도(通度)는 ‘승려가 되려는 이들은 모두 금강계단을 통해 계를 받아야 한다(爲僧者 之)’는 뜻이라고 한다. 또 ‘산의 모양이 부처님이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於印 靈鷲山形)’거나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 萬法 衆生)’는 뜻도 있다고 한다.

통도사에는 재미나는 창건 설화가 전해져 온다. 이 설화는 절 내부에 있는 연못인 구룡지로부터 비롯된다. 예로부터 명당 자리였던 영취산 인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궁궐이나 탑을 세우려 했으나, 아홉마리의 용들이 방해를 하는 바람에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후 절을 세울 터를 찾다가, 그가 직접 날린 나무 오리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칡꽃을 물어오는 것을 보고, 겨울인데도 생생한 기운이 살아 있는 명당임을 알아본다. 처음에 율사는 구룡지에서 용들을 설득하여 나가게 하려하지만, 용들이 말을 듣지 않자, 화(火)자를 종이에 쓰고 연못에 넣은 후 진언을 외워 물을 끓게 한 후 용들을 좇아낸다. 그 중 3마리는 하늘로 올라가려하다 죽고 5마리는 골짜기로 숨는데 이 5마리 용들이 숨은 곳을 오룡곡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먼 용 한마리가 도망가지 못해 자장율사에게 살려달라고 빌자, 이를 불쌍히 여겨 연못을 지키도록 하니 이것이 구룡지의 유래이며,통도사 내부에 있는 구룡지는 용이 지키기 때문에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고 홍수가 나도 물이 불지 않는다고 한다.


통도사는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찰이 아니고 후에 금강계단이라고 불려진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초기 선종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통도사는 임진왜란 때 다른 수많은 사찰과 마찬가지로 화마의 피해를 입었다. 또한 왜구에 의해 전각 손상 뿐 만 아니라, 태화사에 봉안되었던 사리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진신사리 또한 왜놈에게 약탈당했다. 하지만 사명대사께서 직접 일본으로가 왜놈과 단판을 짖고 조선의 포로와 함께 사리도 돌려 받게 되었다.


화마의 피해는 선조 36년(1603년)에 송운대사(松雲大師)가 재건되었고 다시 인조 19년(1641년) 우운(友雲)이 중건하였다.


 사명대사는 어떤 분이신가? : 아래 링크의 내용 중 사명암 부분을 참조하세요

http://blog.daum.net/gmania65/1665



통도사의 전각들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긴축을 중심으로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일주문에 걸려있는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는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한다. 여기에서 '靈鷲山通度寺'에서 鷲는 독수리라는 의미로 속가에서는 '취'라고 읽지만, 불가에서는 '축'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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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지나 오른편에 극락보전, 약사전(藥師殿), 영산전(靈山殿)이 있고, 좌측으로 가람각(伽藍閣), 범종각, 만세루(晩歲樓)가 있다.


극락보전

영산각

영산전

약사전



불이문을 지나 우측으로 관음전, 용화전(龍華殿), 장경각, 대광명전(大光明殿), 황화각, 영각 등이 있고, 좌측으로는 원통방(圓通房)·감로당(甘露堂), 명부전(冥府殿)이 있으며 정면으로는 대웅전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 너머로 응진전(應眞殿), 삼성각, 산신각, 구룡지가 배치되어 있다.


관음전

관세음보살

용화전, 미래불인 미륵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사찰 당우

봉발탑

용화전에 모셔져 있는 미륵부처님


목조건물인 대웅전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1645년에 중건했다. 정면인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각각 다른 현판이 걸려 있는 것도 특이하다. 대웅전의 바로 뒤쪽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 불사리탑이 있다. 그래서 대웅전 내부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다.


금강계단은 음력 초하루에서 초삼일, 음력 보름, 지장재일(음력 18일)과 관음재일(음력 24일)날 만 참배 가능하고 시간도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만 가능하며 우천 시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통도사 구룡지


통도사에서 성보박물관을 보지 않는다면 통도사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1987년에 개관한 성보박물관은 국보와 보물 8점, 지방문화재 32점 등을 전시, 보관하고 있다. 소장유물의 수도 중요하겠지만 그 유물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이었다. 사찰에서 쉽고 접할 수 없는 다수의 괘불탱화 들 뿐 만아니라 각종 보살상과 과거 사찰에서 사용했던 여러 물품 등을 통해서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박물관을 방문한 날, 외국인 한쌍이 너무나도 열심히 유물들을 관찰하고 안내하는 분들에게 그 내용을 물어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행스럽게도 여성분이 우리나라 말을 잘하는 분이었다. 안내하는 분들께 들은 설명을 다시 남자 친구에게 설명해주는모습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의 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노력에 ... 그리고 그 분들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금강계단에서도 다시 조우하였는데, 그곳에서도 한국 불자들과 함께 금강계단을 돌며 기도하는 모습(?)에 다시 한번 감동하였다.

2층에는 부처님의 생애를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八相圖)가 있었는데, 안내하는 분의 설명 중에 도솔천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도솔천이 무엇이에요?"라고 하는 질문에서 이곳에도 외국인을 위한 전문 해설자가 계셨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이것이 어려우면 유물마다 영어, 일어, 중국어로 자세한 설명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통도사 소장 유물이 4만5000여 점에 달하는 데도, 보관장소가 성보박물관 한 곳 뿐이어서 문화재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통도사는 사찰 내 서운암에 불교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제2 성보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성보박물관은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하니 시간 계획을 잘 세워야 할 듯하며, 박물관내의 유물들의 사진촬영은 문화재 보호(일정온도 유지를 위해서는 카메라의 플레시 등이 유해할 수 있다고 함)를 위하여 엄격히 제한되고 있었다.




 통도사 암자순례

http://​http://blog.daum.net/gmania65/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