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강원

설악산 신흥사

산풀내음 2019. 12. 1. 15:23


설악산 눈 소식을 듣고 1년 만에 신흥사를 다시 찾았다. 지난 번에는 신흥사보다는 금강굴, 내원암, 개조암을 중심으로 순례를 했고 그래서 이번엔 신흥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신흥사 일주문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96년)에 자장율사가 향성사(香城寺)란 이름으로 지금의 신흥사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켄싱턴호텔 자리에 창건한 사찰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향성사지 3층석탑이 외롭게 남아 있다. 향성사란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보물 443호인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현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 켄싱턴 스타호텔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신흥사와 떨어져 외롭게 옛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의연한 기상은 옛모습 그래로인 듯 하다.

애석하게도 향성사는 47년 만인 효소왕 7년(698년) 들불로 소실되고 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스님들은 효소왕 10년(701년) 당시 계조굴에 계시던 의상스님을 사주로 하여 현 내원암터에 이전 복구하고 선정사(禪定寺)로 개칭하였다. 

그 후 선정사는 942년 동안 면면히 법등을 밝혔지만, 조선 인조 26년(1645년)에 다시 화마를 만나 소실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영서. 연옥. 혜원스님이 선정사의 폐허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중창의 원력을 세우니 꿈에 백발신인이 나타나 현 신흥사의 터를 점지하면서 이곳은 누만대가 지나도록 삼재가 미치지 않는 성역임을 일러줌을 받았다. 이 꿈은 세 스님이 똑같이 꾸었다니 이상한 서운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절터를 이전하고 절 이름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금강산 건봉사가 전소되면서 대신 신흥사가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고,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면 석가모니 청동대불께서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신다. 

신흥사 개산이래 최대불사인 통일대불 조성불사는 1987년 착공하여 11년만인 1997년 10월에 완성되었다. 통일대불은 석가여래좌상으로 높이 14.6m, 좌대직경 13m 규모로 총 1백8t의 청동이 소요됐으며 좌대둘레 16면에는 나한상이 새겨졌다.

통일대불 점안식에서는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도 봉안되었다. 

통일대불 뒤를 돌아가면 내원불당이 나오고 그곳에서 천수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신흥사 보제루. 영조 46년(1770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신흥사 주불전인 극락보전이 나온다.

보제루 옆에 범종이 위치하고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강원도 유형문화재 14호)은 1644년 조성된 전각이다.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상(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은 의상대사가 조성한 불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치 않다. 학계는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보이는 목조불상으로 보고 있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조사전이 있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명부전과 삼성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