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1일

일해재단 발족

산풀내음 2016. 10. 21. 16:37

198312 1일해재단 발족

 

명칭은 88연구소·안보통일연구소·평화안보연구소를 거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따서 일해로 붙였고, 이후 일해재단이 제5공화국 비리의 하나로 지목되자 세종연구소로 개칭했다. 1983 12 1일 비영리 장학재단으로 출범했으며, 재벌모금 23 5,000만 원을 모아 아웅산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1984년부터 본격적인 기금조성을 시작했고, 2차 이사회에서 재단의 목적을 확대하여 1986 1월 일해연구소를 개소했다.

 

그런데 1988년 제13대 총선 이후, 일해재단은 새세대 육영회와 함께 5공비리의 대표적 사건으로 취급되어 5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대상이 되었다. 조사대상이 되었던 부분은 1984년 이후 기금조성에서의 강제성 등에 맞추어졌다. 5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는 이 재단이 1984년에 185 5,000만 원, 1985년에 198 5,000만 원, 1986년에 172 5,000만 원 그리고 1987년에 42억 원 등 총 598 5천만 원의 기금을 조성했다고 발표했다.

 

일해재단 청문회의 노무현 당시 의원

 

모금과정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었는데 전 국제그룹 회장 양정모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성금 출연자는 총 56명으로 대부분 이름과 액수가 공개되었으나 1987 7 2일 기부한 15억 원의 출연자에 대해서는 세종연구소측에서 이름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가 후에 양정모임을 밝혔으나 양정모가 이를 부인함으로써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이 기부한 20억 원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해재단이 설립된 취지에 대해서도, 전두환이 대통령 사임 후에도 계속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들은 철저히 밝혀지지 않은 채 전두환의 국회청문회 증언으로 마무리되었다.

 

국회에서 열린 5공비리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전 국제그룹회장

과거 '현대판 아방궁'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세종재단의 전신 일해재단 영빈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