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2일

먼로주의(Monroe Doctrine) 천명

산풀내음 2016. 10. 23. 10:32

182312 2,

먼로주의(Monroe Doctrine) 천명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James Monroe, 1758 4월 28 - 1831 7월 4) 가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배제를 천명한 이른바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1823 12 2일 의회연설을 통해 발표했다.

먼로는 의회 연단에서 "만약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 어디라도 식민지로 만들려 하거나 아메리카의 어떤 나라든지 억압하고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미합중국의 안전과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유럽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먼로독트린은 스페인의 간섭 없이 남미에서 자유무역을 원하는 영국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됐다. 영국은 당초 불간섭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영미선언 공동발표를 주장했었다. 먼로의 발표에 가장 당혹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였다. 그는 스페인과 공동으로 군사를 동원해 남미지역에서 일고 있는 혁명바람을 차단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8세에 제5대 대통령이 된 제임스 먼로는 경륜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독립전쟁 때는 트렌튼 전투에서 싸웠고 버지니아 주지사를 두 번 역임했으며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을 지냈다. 외교관 재임 시절에는 루이지애나 매입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또한 전임자였던 제퍼슨이나 메디슨 처럼 국무장관을 역임하면서 부통령보다는 오히려 국무장관 자리를 더욱 빛나는 자리로 만들었다.

 

이 시기는 북동부에서 조선업 대신 제조업이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기계의 시대가 열린 것도 이 평화로운 기간이다. 엘리 휘트니, 시계 제조로 유명한 세스 토마스, 프랜시스 캐벗 로웰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미국도 이제는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로 접어들었다. 영국과 맺은 일련의 전후 조약들로 국경도 튼튼해져 영국과의 전쟁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먼로 행정부가 역사에 남긴 가장 뚜렷한 족적은 1823년에 그가 의회에 보낸 교서였다. 그것은 먼로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 1767-1848) 국무장관의 작품이기도 했다. 훗날 이 교서는 먼로주의라고 불리게 된다. 존 퀸시 애덤스는 미국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의 아들이며 1825년에 미국 제 6대 대통령이 된다.

 

먼로는 우선 미국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미국 역시 유럽의 기존 식민지나 정부에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복잡한 유럽 정치에서 손을 떼려는 고립주의적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인식이기도 했다.

 

이 같은 새로운 현실은 신세계에서 에스파냐 제국의 몰락과 남아메리카를 휩쓴 반란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그 결과 남아메리카에서는 시몬 볼리바르, 호세 산 마르틴, 베르나르도 오긴스 같은 지도자들 아래 신생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남아메리카 역사에는 너무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베르나르도 오긴스는 아일랜드군 장교의 아들로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여 칠레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리하여 1822년이 되자 미국이 독립 공화국으로 인정한 나라는 멕시코,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라플라타(오늘의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파나마)에 이르렀다.

 

긍정적으로 보면 먼로주의는 이른바 미국 독립의 대장정을 완결 지은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독립전쟁에서 시작하여 독립 후 다른 나라들과의 조약, 루이지애나 매입, 1812년의 미영 전쟁, 전쟁 이후의 협약에까지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먼로주의는 미국이 중남미 일에 끼여들면서 남아메리카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고압적 간섭의 토대를 제공해준 것이기도 했다.

 

먼로주의는 미국 외교 정책의 분수령이 되었다.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F. 케네디 등 먼 후대의 미국 대통령들도 인용한 바 있는 미국 외교사상 매우 길게 지속된 외교 입장이다. 먼로가 자신이 내세운 이 외교 방침의 의도와 영향이 2백여 년 동안 별 변화 없이 지속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