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산풀내음 2016. 10. 26. 21:12

1979 12 6,

통일주체국민회의, 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1979 12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실시하는 제10대 대통령선거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국의 대의원 2560명 중 2549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의원 827명의 추천을 받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 10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헌법 제48조 규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그는 단독으로 입후보해 찬성 24 65, 무효 84표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 해 12 21일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최대통령의 임기는 당선 즉시 개시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잔여 임기인 1984 12 26일까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79 11 10일 특별 담화를 통해 잔여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헌법을 개정하여 제11대 대통령 및 국회의원 총선을 실시,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향후 정치 일정을 밝힌 바 있어 임기는 채우지 못했다.

 

더구나 정치적 기반도 없이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런 유고로 대통령직에 오른데다 신군부측의 한계 설정 위에서 집권한 탓에 그는 당시의 혼란한 시국을 수습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1980 5 18일 광주민주화 운동이 발생하고 이와 관련해 군부의 무력 진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취임 9개월 만인 1980 8 16일 하야하고 말았다.

 


최규하 대통령 지난 1980 416일 전두환을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임명하는 장면.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후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제5공화국 출범 과정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1987년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라는 야당과 국민의 압력을 받았으나 끝까지 거부했다. 이후 5.18특별법에 의해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물어 국민의 의혹을 해소시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