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7일

박정희 대통령 서독 방문

산풀내음 2016. 10. 30. 08:22

1964 12 7,

박정희 대통령 서독 방문

 

박정희 대통령이 1964 12 7일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서독 쾰른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전세기가 없어 서독에서 보내준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60명의 일반승객과 함께 타고 일곱 곳이나 경유하며 서독에 도착하는 데 28시간이나 걸렸다. 말이 국빈방문이지 숙소는 10평에 불과했고 연도에 걸린 태극기도 스무 개 남짓이었다.

 

 

박 대통령이 서독행을 결심한 것은 차관을 받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외자로 수출산업을 육성하려 했지만 달러를 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미국조차 무상원조를 받는 나라에 차관을 줄 수 없다고 했고 일본과는 국교수립도 안된 상태였다. 외자도입은매국(賣國)’으로 비판 받던 시절이었다.

 

박 대통령은 9일 오후 에르하르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고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차관을 요청하였다. 한국이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준 덕분이었는지 에르하르트 총리는 회담 후 담보가 필요 없는 財政(재정) 차관 2 5,000만 마르크( 4,770만 달러)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10일 오전, 박 대통령은 1963 12월부터 서독에 파견한 광부들과 1964 11월부터 서독에 파견한 간호사들을 찾아 위문했다. 오전 10 40, 박 대통령이 탄 차가 루르 지방의 함보른 탄광회사 강당에 도착했다. 인근 탄광에서 근무하는 한인 광부 300여 명, 뒤스부르크와 에센 간호학교에서 근무하는 한인 간호원 5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했다. 1인당 GNP 87달러(1962)에 불과하던 시절 외화를 벌기 위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난 이들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이때 구상된다. 박 대통령은 독일이 자랑하는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직접 주행해보고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실감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귀국 직후 '수출진흥회의'를 만들어 이듬해 1월 첫 회의를 연 이래 1979년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회의에 참석하며 수출을 독려했다.


출처,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6&mcate=M1016&nNewsNumb=20140314468&nidx=14469


 

서독 방문 후 귀국 연설

서독방문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