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3일

독일 3월 혁명 (Deutsche Revolution 1848/49) 발발

산풀내음 2017. 1. 10. 22:36

1848 3 13,

독일 3월 혁명 (Deutsche Revolution 1848/49) 발발

 

프랑스 혁명(1787-99)이 유럽을 휩쓸 당시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이란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성로마제국은 중앙집권적인 로마나 그 이후 제국과는 달리 이름만 제국일 뿐 오히려 지방 세력들의 느슨한 연합이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같은 왕조 국가가 있었는가 하면, 교회 공화국, 도시국가, 그리고 많은 제후들(소지배자들)도 있었는데 그 각가지 정치체들은 빈에 있는 황제에게 명목상으로는 충성하면서 서로 간에는 독립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왕권을 위협받자 그 당시 프로이센의 빌헬름 2세와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트 2세는 프랑스의 구질서 회복을 선언하고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에 의하여 수많은 제후령이 해체되고 교회령이 몰수되었으며 소규모 지배권과 제국도시들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 결과 한때 300개를 넘었던 정치체들이 40개로 축소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하여 라인동맹이 결성되자 기존의 신성로마제국은 없어지고, 1807년에는 베스트팔렌왕국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1815년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회의에서는 독일연방의 창설을 결의하였는데, 그것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비롯한 4개의 주권 국가와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 4개의 자유 도시를 포함한 전체 359개의 정치체로 이루어진 느슨한 국가연합 형태였다. 이 독일연방의 중앙기구는 프랑크푸르트에 설치된 연방의회가 유일했다.

 

1830 7월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 샤를 10세가 루이 필리프로 바뀌는 일이 벌어지자 독일에서도 자유와 통일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운동이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각 영방들이 강경하게 대처해 독일에서 자유주의 운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1848 2월 프랑스에서 다시 혁명이 일어나 공화국(2공화국)이 선포되자, 1848 3 13일 반동적인 `빈 체제`의 중심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폭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독일 3월 혁명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2월 혁명에 영향 받아 일어난 이 시민 봉기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독일 전역으로 파급돼 독일 3월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이에 일부 영방에서 자유주의자들로 구성된 내각이 탄생했는가 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빈체제 반동의 기수인 메테르니히가 런던으로 망명하였고,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서도 혁명이 일어나 당시 왕이던 빌헬름 4세가 자유주의자인 캄프하우젠을 중심으로 새 내각을 구성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혁명의 결과 1848 5월 프랑크푸르트의 성 바울 성당에서 국민의회가 개최되었다. 의회의 목표는 독일연방을 하나의 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미래 독일국가의 기본체제에 대한 문제가 심도 있게 토론되었고, 여기서 대독일주의와 소독일주의가 대립하였다. 대독일주의는 오스트리아의 독일계 주민들과 함께 합스부르크 왕국 전체를 포함한 제국을 주장한 데 비하여, 소독일주의는 주로 프로이센을 주도로 프로이센 왕을 세습왕으로 하고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국가 창설을 주장하였다.

 

결국 이 국민의회는 프로이센 왕에게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전 독일의 황제로 취임하게 하여 독일의 통일과 동시에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이 국민의회의 결정이 독일 전체 제후들의 합의가 없는 소독일적 결정에 불과하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국가창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에 독일의 각 연방정부들은 의회에 파견한 대표를 소환하였고, 잔여 의원들은 군대에 의하여 1849 6 18일 강제 해산되었다. 1848년 독일 혁명이 실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 혁명이 실패했다고는 하나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프로이센에서는 1851년 헌법을 제정하여 형식적인 입헌 군주제도를 도입하였다. 이 헌법은 1918년 통일된 독일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까지 프로이센의 헌법으로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