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3일

오스트리아 재벌 로스차일드, 나치에 체포

산풀내음 2017. 1. 10. 22:42

1938 3 13,

오스트리아 재벌 로스차일드, 나치에 체포

 

1938 313, 유럽최고의 유태인 명가(名家)를 자랑하는 로스차일드가(, Rothschild family)의 오스트리아 빈(Wien) 저택에 나치 친위대가 들이닥쳐 루이 폰 로스차일드 남작을 연행했다.

 

이날은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강제 병합한 날. 히틀러가 이 가문을 겨냥한 것은 재산이 많은 유태인이기 때문이었지만 이 가문이 미술품과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히틀러의 군화 발이 닿는 곳은 언제나 문화재 약탈도 뒤따랐다. 유태인이 주로 표적이었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프랑스였다. 히틀러는 100년 전 나폴레옹이 빼앗아간 게르만 민족의 미술품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의 또 다른 꿈 총통미술관 건립을 실현하려 했다.

 

히틀러가 11세 때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오스트리아 린츠가 후보지. 로스차일드 남작은 상당수의 재산을 이미 영국으로 빼돌려 재산상의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장품은 고스란히 히틀러 손에 넘겨져 총통미술관으로 보내졌다.

 

로스차일드가를 명문가로 일군 사람은 18세기 중엽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태인 거주지역 게토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였다.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 나폴리 등으로 건너간 다섯 아들도 현지에서 막대한 부를 쌓아가며 세계를 쥐락펴락했다.

 

이 가문의 성장사는 유럽의 근ㆍ현대사와 맥을 같이한다. 나폴레옹, 웰링턴, 메테르니히, 합스부르크, 히틀러 등이 유럽역사의 전면을 장식했다면 배후에는 로스차일드가가 얽혀있었다. `밸푸어선언`(1917)을 이끌어내 유태민족 1900년 유랑의 한을 풀어준 것도, 이스라엘 건국 시 재정적으로 후원한 것도 로스차일드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