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7일

언더우드(원한경)박사 부인, 피살

산풀내음 2017. 1. 14. 16:15

1949 3 17,

언더우드(원한경)박사 부인, 피살

 

1949 3 17일 연희대 명예총장 언더우드(H. H. Underwood, 원한경)의 부인 와그너 여사(Mrs. Ethel Van Wagoner Underwood)가 자택에서 복면을 한 괴한들이 쏜 총탄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그 날 오후 3시경 와그너 여사는 연세대학 구내에 있는 자택(현 연세대 언더우드가 기념관)에서 20여명의 교수 부인들과 모임을 갖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고, 와그너 여사가 현관문을 열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이 청년은 무조건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우겼고, 와그너 여사는그래서는 안 된다며 옥신각신했다. 소란한 틈을 타서 또 한 명의 청년이 들어와 와그너 여사를 향해 뒤에서 총을 쏘았다. 이들은 다른 교수 부인들에게 꼼짝 말라고 위협을 한 다음 달아났다. 와그너 여사는 백낙준 총장 부인의 차로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운명하고 말았다. 장례식은 연희대학교장으로 치러졌다.

 

에델 반 와그너는 1912년 대학을 갓 졸업한 24세 때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을 떠나 12000㎞나 떨어진 한국으로 올 정도로 용감했다. 그녀는 4년 동안 한 교실에서 학년이 모두 다른 30명의 학생을 가르친 서울외국인학교의 유일한 교사였다. 1931년 백두산 정상에 오르기도 했던 에델은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을 설립했고 이 고아원은 에델 언더우드 소녀고아원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됐다.

 

연희대학생이며 민주학련위원장인 김석준 등 범인 6명은 사건발생 5일 만에 모두 검거됐다. 이들은 "파티에 참가한 모윤숙 여사를 향해 쏜 총탄이 빗나가 와그너 여사가 맞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과 관련해 사실은 한미우호관계를 깨뜨리려 했던 것이 이들의 의도였다는 견해와 일제 시대 친일행각으로도 유명하고 해방이 되자 이승만의 앞잡이로 낭랑구락부를 만들어 사교를 명분으로 미국 접대를 담당했던 모윤숙을 처단하려다가 공교롭게 와그너 여사가 피살되었다는 견해가 나뉘어지고 있다.

 

모윤숙과 낭랑구락부, 몸과 자손심 팔아 얻고자 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