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7일

필리핀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대통령, 비행기 사고로 사망

산풀내음 2017. 1. 14. 16:18

1957 3 17,

필리핀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대통령, 비행기 사고로 사망

 

1957 3 17일 필리핀의 반공지도자 막사이사이(Ramón Magsaysay, 1907 8월 31 ~ 1957 3월 17) 대통령이 남부 필리핀 세부섬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많은 수행관리들과 함께 사망했다.

 

당시 사고 비행기와 막사이사이의 시신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막사이사이는 1932년 필리핀대학을 졸업하고 태평양전쟁 직전까지 민간회사에 근무했다. 1945년에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명령으로 그의 고향인 잠바레스 주의 군정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1946년에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1950년에는 국방장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필리핀은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후에도 부흥이 늦어진 데 따른 경제 위기와, 2차 세계대전 당시 항일 게릴라 조직이 모태가 된 후크단(후크발라하프)의 반란 때문에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있었다.

 

1953 국민회의당에 입당하여 동년 4월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 "내가 먹기 전에 국민이 먹어야 한다. 나의 부친이라도 범법하면 감옥에 보내겠다" 등의 요지로 유세(遊說)하였고, 11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의전상의 예우를 간소화하는 등 서민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서민 대통령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통령 임기 중 막사이사이는 그의 가족 및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개혁은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회의 보수성으로 말미암아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토지 분배를 비롯하여 학교 건설 및 부정으로부터의 국민 보호를 약속에 앞서 실천하였다. 서민과 빈곤층을 위한 정책이 최우선이었다. 예를 들어, 빈민가 및 낙후한 지방에 공동 우물을 설치하여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이용하게 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경제성장은 서서히 궤도에 올랐고 당시 필리핀 사회에 만연했던 반란은 평정되어 갔다.

 

그러나 그는 필리핀 남부의 세부대학에서 연설을 하고 비행기편으로 마닐라로 돌아 오는 중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했다. 향년 51세였다. 사망 당시 그가 가지고 있던 재산은 생명보험금 하나와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어진 허름한 자택 하나가 전부였다. 이듬해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막사이사이상이 제정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장기려, 장준하, 박원순 등이 수상했다.

 

A nation in mourninga huge crowd joined the funeral procession of President Ramon Magsaysay as it passed through the streets of Manila.

마닐라 북부에 안장된 막사이사이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