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20일

방정환, 월간잡지 ‘어린이’ 창간

산풀내음 2017. 1. 15. 19:15

1923 3 20,

방정환, 월간잡지 어린이창간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앵도 같은 어린 입술로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대로 자연의 소리이며, 고대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비둘기와 같이 토끼와 같이 부드러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뛰노는 모양 고대로가 자연의 자태이고 고대로가 하늘의 그림자입니다. 거기에는 어른들과 같은 욕심도 아니하고 욕심스런 계획도 있지 아니합니다. 죄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그것은 우리의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느 때까지든지 이 하늘나라를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사람이 모두, 이 깨끗한 나라에서 살게 되도록 우리의 나라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을 위하는 생각에서 넘쳐 나오는 모든 깨끗한 것을 거두어 모아 내는 것이 이 '어린이'입니다…"


- '어린이' 창간호에 쓴 창간사 '처음에'의 일부 -


1923 3 20일 소파 방정환(18991931)이 어린이들을 위한 월간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이 잡지의 신조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 갑시다`였으며 이 문구는 매호마다 독자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이 처음 만들었다. 그 때까지는 동몽(童蒙), 아동, 소년 등으로 불렀다.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말에 ‘늙은이, 젊은이와 동등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았다. 기존의 윤리에 얽매여 어른들에게 종속되었던 어린이들을 어린이다운 감성으로 해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한 달에 두 차례씩 발행됐으나 한 달에 한번씩 발행하는 월간으로 바뀌었고, 개벽사가 발행을 맡았다. 창간호는 안데르센의 동화인 `성냥팔이 소녀`를 번역하여 게재했고, 12페이지로 구성됐다.

 

월간으로 바뀌면서는 1세대 아동문학가들인 고한승, 마해송, 정인섭, 이원수 등의 동화와 윤극영의 동요극 등이 선보였고, 1930년대부터는 이광수, 주요한, 주요섭, 이태준, 정지용 등도 참여하게 됐다. 이후 '어린이'는 아동문학의 요람으로 자리잡으면서 아동문학이라는 근대적 문학장르도 태동시켰다.

 

이정호, 신영철 등이 방정환을 이어 12년 동안 잡지를 계속 맡았으나 1934 7월에 123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방정환이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도 사라졌다. 광복 이후 1948 5월 고한승이 `어린이` 잡지를 속간했지만 1년 반 만인 1949 12월 통권 제137호로 폐간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방정환은 어린이를 위해 삶 전체를 바친 어린이운동의 선구자였다. 그는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어른 세계의 주변에만 머물렀던 어린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끌어올렸다.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셋째 딸 손용희와의 결혼도 그의 어린이운동에 도움이 됐다. 1923 5 1일엔 아동문학가 윤극영, 마해송과 함께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색동회’를 창립하고 동시에 이날을 ‘어린이날’로 정해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서울 거리에는 어린이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골목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는 전단 수만 장이 뿌려졌다.

 

1931 7, 방정환은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세상을 떠나던 날 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야겠어. 문간에 검은 말이 모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왔어. 어린이들을 두고 가니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