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일

유길준. 첫 서양견문록 `서유견문’ 간행

산풀내음 2017. 1. 28. 23:45

18954 1,

유길준. 첫 서양견문록 `서유견문간행

 

서유견문(西游見聞)’의 필자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나라 최초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다. 최초의 서양 유학생으로서 서양 문물과의 만남과 충격, 설렘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서유견문이고 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 저술이자, 최초의 서양 문물 소개서이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지녔다는 것은 유길준의 선각자적 개척·창의 정신과 역사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책의 집필을 생각한 것은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개화한 일본의 문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때부터였다. 석 달 동안의 유람이 끝난 뒤에 그는 새로운 문물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일본 개화파의 거물이었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집에 묵으며 그가 경영하던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에 입학하여 많은 책을 읽고 공부했다.

 

그는 나중에 미국에 가서도 서양 문물을 공부하게 됐지만 `서유견문의 집필은 이 때 구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사실상 후쿠자와 유키치가 집필한 `서양사정(西洋事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화를 꿈꾸던 구한말 선각자 유길준(兪吉濬)이 최초의 대미외교사절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은 그의 나이 27세였던 1883 9월이었다. 아더 미국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리며 신임장을 제정한 보빙사 일행은 박람회를 참관하고 병원ㆍ소방서ㆍ우체국 등을 둘러보았다. 일행이 2개월여의 공식 일정을 끝내고 귀국선에 몸을 실을 때 유길준은 현지에 남는다. 다행히 에드워드 모스 피바디 박물관장이 최초의 국비 유학생인 그를 도왔고, 그 역시 7개월 만에 영어로 편지를 쓸 만큼 노력한 덕에 동부최고의 명문학교 거버너 덤머 아카데미(Governor Dummer Academy, 고등학교에 해당)에 입학, 이후 보스턴 대학교에 입학한다.

 

1883 9 미국에 파견된 조선의 보빙사절단원(왼쪽 세 번째가 유길준), 앞줄 왼쪽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홍영식, 민영익

최초의 견미(遣美)사절단 보빙사가 미국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

앞줄은 왼쪽부터 정사였던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이며, 뒷줄은 오른쪽부터 종사였던 변수, 고영철, 유길준, 그리고 경호원 격인 무관 최경석 등이다. 미국의 엄청난 국력을 본 이들은 현지에서 상의해서 유길준이 남아서 국비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유길준이 다녔던 Governor Dummer Academy

1884-85까지의 이 학교 학적부에는 유길준의 이름이 선명하다. 그리고 도서관 앞에는 2005년에 세운 유길준 기념비도 있다.

 

그러나 1884 12월 조국으로부터 전해진 갑신정변 소식은 그를 번민에 빠뜨렸고 그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보스턴대학교를 중퇴하고 영국ㆍ이집트를 거쳐 홍해를 지나 싱가포르, 홍콩, 일본을 경유하는 6개월간의 여정 끝에 제물포항에 도착한 것은 1885 12. 김옥균 등과 친하다는 이유로 체포와 7년간의 연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인 최초의 근대 서양 견문록서유견문(西遊見聞)’을 준비했으니 전화위복이었던 셈이다. 1895 41, 일본의 교순사(交詢社)에서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인 서유견문이 1000부 한정본으로 발간됐지만 1896년 친러내각이 득세해 유길준이 일본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금서로 낙인 찍혔다.

 

미국 유학 시절 그도 영어를 배우고 기독교를 깊이 연구했지만, 윤치호와 달리 전통적 가치관을 폐기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참정권, 시민윤리, 합리주의 등을 보고 조선의 처지를 비관, 좌절한 윤치호와는 대조된다. 그도 양반관료의 횡포로 일반 국민들이 공평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폐단이 있음을 예리하게 비판했지만, 조국이 적절한 개혁만 단행한다면 백인종들의 문명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서유견문은 「서문」과 「비고」에 이은 모두 20 71항목으로 된 556쪽 가운데서, 1, 2편과 제19, 20편을 지구 세계의 개론과 나라들의 구별, 세계의 하천과 인종·물산, 또는 세계의 중요 도시 등, 세계의 인문지리를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제3편부터 제18편까지는 서양의 정치 제도와 문명의 실태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편, 이 《서유견문》이 단순한 견문기에 그치지 않고 "남의 저서를 번역해서 편집하는" 근대 번역의 모범과, "문필가의 궤도"를 벗어나면서까지 국·한문 혼용의 문체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문법 연구가의 모습까지를 확인시켜 준다. 이런 언어관이 서유견문의 표기법에서 그의 문법 연구로 이어진 근대 국어 연구의 선구가 되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