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6일

제1회 아테네 올림픽(1896 Athens Olympics) 개막

산풀내음 2017. 2. 1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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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아테네 올림픽(1896 Athens Olympics) 개막

 

기원전 329년 고대 올림픽 제전을 위해 건설됐던 팬아테나익 스타디움, 수세기를 거치면서 수리되고 다시 복구됐다가 방치됐던 팬아테나익 스타디움이 대리석으로 새롭게 장식되고, 머리핀 모양으로 길고 홀쭉한 운동장이 다듬어졌다. 고대 올림픽이 중단된 지 1503년만인 1896 4 5일 부활절을 맞아, 그리스 왕 조지 1세의 역사적인 개막선언과 더불어 현대 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그리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헝가리, 스웨덴, 덴마크, 칠레,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13개국, 311명의 선수들이 기대 속에서 출전했다. 관중들로 꽉 찬 경기장, 담장마다 걸터앉은 관중, 운동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 언덕의 구경꾼, 스타디움을 둘러싸고 있는 골목길마다 개막식의 축제 분위기가 넘실댔다.

 

세계 평화와 친선을 목표로 부활된 현대 올림픽은 프랑스 교육자 쿠베르탱(Pierre de Frédy, Baron de Coubertin, 1863-1937) 남작의 정열의 열매였다. 그는 일찍이 프랑스 교육의 맹점인 이론 교육 일변도의 교육제도에 체육 교육을 불어넣어 교육 혁명을 시도했다.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뒤 사기가 떨어진 프랑스 청소년들의 의욕을 돋우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몸과 마음을 활달하게 개발하자는 쿠베르탱의 생각이었다. 1888년 그는 26세 때 학교 체육 교육을 진흥하기 위해 프랑스 체육연맹의 결성에 참여했고, 체육 잡지를 발간,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노력했다. 그는 또 체육활동이 활발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북미등을 순방하다가 올림피아 동산을 찾아보고 올림픽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교육장이라고 판단, 필생의 사업으로 올림픽 부활을 결심했다.

 

 

1893년 쿠베르탱은 파리 솔본느 대학 강당에서 국제 체육 연맹 회의를 주재, 각국에 체육 단체를 국제 체육 연맹으로 묶는데 성공했고, 1894 6 14일 국제 체육 연맹 정기 총회에서 정식으로 올림픽 부활을 발기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각국이 압도적으로 올림픽 부활에 찬동했고, 그리스 대표가 첫 대회를 고대 올림픽 발상지였던 아테네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 드디어 1896년 제1회 올림픽 대회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다.

 

현대 올림픽 첫 회가 아테네에서 열리기로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리스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그리스 정부는 극심한 경제난과 정정의 불안으로 대회를 반납하려 했다. 쿠베르탱이 직접 그리스를 방문하고 콘스탄틴 황태자를 찾아가 올림픽 개최에 대하여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쿠베르탱의 열의에 감동한 황태자가 올림픽 조직 위원회 명예위원장직을 수락했고, 국민들의 성금, 기념 우표 발행, 입장권 수입으로 팬아테나익 스타디움의 보수 등 준비가 진행됐다.

신대륙 미국에서는 프리스턴 대학의 교수이자 초대 IOC 위원인 윌리암 슬론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미국 선수들이 대서양을 건너 참가했다.

 

1894년에 IOC에서 새로 만든 첫 규정은 올림픽에는 오직 아마추어 선수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펜싱 경기를 제외하고는 아마추어 규정에 입각해서 진행되었다. 경기 규정과 같은 것들은 체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 위원회는 각 국의 제각기 다른 규정들 속에서 새로운 규정을 정해야 했다. 심사 위원회, 심판, 경기 감독관은 고대언어로 구성되었다. 고대올림픽을 표방했기 때문에 여자는 참가할 수 없었으며, 경기도 철저히 남자들을 위한 경기뿐이었다. 특이하게도 마지막 전날(14)은 어떠한 경기도 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고대올림픽에서는 시행되지 않았던 라톤 경기가 처음으로 시작된 대회다. 마라톤의 길이는 약 40.2km (25마일)로 현재보다 더 짧았다고 한다. (사실 1.9km가량이 추가 된 건 1908 런던 올림픽부터였다.) 그리스의 목동 출신인 스피리돈 루이스가 2시간 58 50초로 1위를 차지하여 그리스인의 자부심을 높였다.

 

당시 마라톤 마을과 아테네를 잇는 40km 마라톤코스를 달리는 선수들

 

개최 종목은 레슬링 / 사격 / 사이클 / 수영 / 역도 / 육상 / 체조 / 테니스 / 펜싱이 있었으며, 때론 좀 많이 황당한 대회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사이클 100Km라든가 12시간 주행이라든가 수영 100m 해군 자유형 이라든가. 도리어 할 것 같은데 안 한 경기들도 있었다. 올림픽 종목에 관한 첫 공식 발표에서 축구크리켓과 같은 스포츠가 예정되었지만 결국 이 스포츠들은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그 결과 영국의 사립학교 출신 선수들의 대거 불참을 불러왔다. 조정요트는 열릴 예정이었지만 경기가 열릴 날이 되자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취소되었다. 참가자가 없어서 취소됐다고도 한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게임 100 YDS 달리기 스타트 라인상에서 출발직전의 모습

사이클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