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6일

경주 155호 고분(천마총) 발굴 시작

산풀내음 2017. 2. 16. 06:23

19734 6,

경주 155호 고분(천마총) 발굴 시작

 

1973 4 6일부터 김정기 박사를 단장으로 한 고분발굴 학술조사단이 155고분 발굴에 착수해 9 20일까지 5개월 반 동안 신라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각종 유물 11,297점을 출토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가물고 더워 발굴팀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주민들 사이에는 "왕릉을 파헤쳐 큰 가뭄이 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대박이 터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711, 고분에서 첫 유물의 출토를 시작으로 713일에는 1500년간의 긴 잠에서 깬 신라금관이 출토됐다. 신라금관으로는 7번째, 광복후로는 최초였다. 그리고 823, 발굴단의 눈을 의심케 하는 유물 한 점, 천마도(天馬圖)가 출토되었다. 이와 같이 5개월여 동안 발굴된 유물 중 특히 학계의 관심을 끈 것은 새 날개 모양으로 만든 금제관식 2, 자작나무 껍질로 짜서 천마도를 그린 장니 한 벌, 서조도와 기마인물도 등이다.

 

155호 고분으로 불리던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아 천마도가 출토된 고분이라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고분 이름을 천마총으로 짓자 이번에는 경주 김씨 측에서 들고 일어났다. 김씨 성을 가진 임금의 무덤이 분명할진데 하필이면 왜 말 무덤이냐는게 그들의 항변이었다

그리고 천마총에서 천마도가 발견되기 전에 금관이 미리 발견돼 취재진들을 따돌리고 발굴팀은 금관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가 대통령에게 미리 친견 절차를 거치고 내려왔다.

 

천마총은 경주 노서리와 노동동 고분군이 밀집해 있는 대릉원의 서쪽 끝부분에 위치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로 등장했었고 지금도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단골메뉴로 손꼽히는 역사기행 경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적지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주 개발 지시에 따라 경주관광종합개발 10개년 계획안이 마련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고분 중에서도 가장 큰 황남대총을 발굴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발굴팀은 고분발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우선 황남대총 앞에 위치한 155호 고분 천마총을 먼저 시험 삼아 발굴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건의해 155호 고분에 대한 발굴작업이 전격적으로 추진됐다.

 




1973년 천마총 발굴모습

 

대통령은 1969년 경주 불국사 복원을 지시하고 복원공사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1973 73일 불국사 준공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천마총 발굴현장을 방문해 상황을 둘러보고 발굴단원과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해 격려하기도 했다대통령이 고분 발굴현장을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기록되고 있다.

 

일제시대 불국사

천마총 발굴 현장 방문

 

7 13일 신라조형 미술의 극치라고 찬사를 얻은 금관출토에 이어 823일에는 천마총에서 천마도가 발굴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천마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신라시대의 회화로는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천마도는 천마총에서 출토된 마구장비(馬具裝備)에 그린 장식화로 5~6세기 신라시대 그림이다. 천마도가 그려진 채화판은 마구의 일종인 장니로 추정된다. 중앙에 흰색으로 천마도를 그렸고 가장자리는 흰색, 붉은색, 갈색, 검정색 선으로 인동당초문을 장식했다. 천마는 흰 말이 말갈기와 꼬리털을 날카롭게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이다.

 

천마도 마구장비는 햇빛과 공기가 닿지 않도록 응급처치된 후 조심스럽게 서울로 옮겨졌고 색이 바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존작업을 거쳐 국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 그리고 1982 11월 16 대한민국의 국보 207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립경주박물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다.

 

천마도와 같은 양식의 그림이 만주 집안현에 있는 5~6세기 무용총 천장벽화에도 남아 있어 고대 삼국문화의 상호관계를 밝히는데 매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천마총은 신라시대에 대한 많은 비밀을 풀게 하는 열쇠가 되기도 했지만 의구심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기도 했다. 천마총은 또 화려한 금세공기술을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신라를황금의 나라라는 수식어를 확고하게 굳히는 단서를 제공했다.

 

천마도 발굴 장면, 경주 155호 고분을 천마총으로 이름 짓게 한, 최초의 고신라 회화 천마도가 그려진 백화수피말다래를 수습하는 장면. 발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모자랐던 1973 7월 발굴 당시에 약물처리 실수로 천마도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천마도,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겹쳐 말다래를 만들고 그 위에 화려한 천마도를 그려 고신라 최초의 회화작품으로 시선을 끌고 있는 국보 백화수피천마문장니.

경주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6개의 금관 중 규모가 가장 크면서 금판의 두께가 두텁고 가장 화려한 천마총 금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