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0일

미국 탁구선수단 중국 방문. 핑퐁외교 시작

산풀내음 2017. 2. 21. 20:30

19714 10,

미국 탁구선수단 중국 방문. 핑퐁외교 시작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석한 미국 탁구 대표단 15명과 기자 4명이 1971 4 10일 중국을 방문했다. 1949년에 중화 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로 미국 스포츠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국교도 없고, 오랫동안 서로 적대시해 온 미국과 중국이 갑자기 취한 `우호 무드`에 세계가 놀랐다. 이른바 `핑퐁외교(Ping Pong Diplomacy)`의 시작이었다. 방문단은 10일간 머무르는 동안 저우런라이(周恩來)총리와 면담하고 북경, 상해, 광주 등을 순방함으로써 20년 이상 막혔던 미국과 중국의 교류의 징검다리를 놓은 것이다. 1971 2월에는 리차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미국과 중국은 상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In a symbolic opening of communication with Washington, China invited the U.S. table tennis team to visit Beijing. The team, which was already in the region competing in Japan arrived on April 10, 1971, becoming the first U.S. sports delegation to visit Beijing since the Communists took power in 1949. The decision reportedly came directly from Mao. In this image, members of the American ping pong team watch a match between a teammate and a Chinese opponent in Beijing.

American delegation of tennis table players visit the Great Wall of China, in April, 1971

In February 1972, U.S. President Richard Nixon, who had a reputation as a tough anti-communist, traveled to China to hold talks with Communist Chairman Mao Zedong and Premier Zhou Enlai. on the final stop of the trip to Beijing, Hangzhou and Shanghai, the U.S. and Chinese governments issued the Shanghai Communiqué a pledge to work toward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Nixon later said of the trip: "This was the week that changed the world, in which the two sides agreed to build a bridge across 16,000 miles and 22 years of hostilities which have divided us in the past. In this Feb. 22, 1972, image, Mao and Nixon shake hands after their meeting in Beijing.

 

미국 탁구단의 중국 방문은 탁구대회에 참가한 미국 대표팀이 중국 방문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이들의 방문을 주저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이들의 중국 방문을 허락했다. 마오쩌둥이 처음에 이들의 방문을 주저한 것은 당 내의 반응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미 제국주의` `소련 수정주의`와 아울러 `최대의 적`이라며 극구 매도하도록 부추겨 온 사람은 마오쩌둥 자신이었다. 그 급격한 변신이 지도부내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급진 좌파에게 동요를 안겨 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오쩌둥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소련의 군사위협이었다. 1969년의 진보도 사건 등 중-소 국경에서 일어난 대규모 군사 충돌은 그러한 불안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마오쩌둥은 `미국 카드`를 갖고 싶었다. 미국 역시 소련과 냉전 중이었기 때문에 `중국 카드`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니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72 2월 중국을 방문해 국교정상화 의지를 내비쳤고, 그로부터 7년 뒤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미국을 찾아 과학, 기술, 문화에 관한 협력 문건에 서명했다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선언한 1970년대 후반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의 장막'을 걷어 올린 시기로 미국 기업이 중국에 처음 진출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양국은 수 차례에 걸친 당국 회담을 거쳐 1978 12월 코카콜라가 중국에서 생산공장을 만드는데 합의했다. 외국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세운 첫 사례였다. 이후 식료품, 의류, 주방용품, 가구, TV, 컴퓨터 스크린 등 중국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이 미국시장에 광범위하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코카콜라의 중국 진출 초창기의 모습.